순결을 교훈으로 사용해 온 제주도 내 한 여자중학교가 개교 후 57년 만에 문구를 교체했다. 서귀포지역의 초등학교는 구시대적 디자인 대신 귤과 주상절리 등 지역 특성을 새롭게 교표에 담아냈다.
제주도교육청은 일제 및 구시대 잔재 청산 작업에 지난 2년 간 58개교가 참여했다고 17일 밝혔다.
가장 많은 13개교가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 교목을 토종 향나무나 제주 자생 팽나무 수종으로 교체했다. 일본이 원산인 영산홍 교화를 무궁화 등으로 바꾼 학교도 2곳이다.
교표와 교기를 변경한 학교도 13곳에 이른다. 대부분 일장기나 욱일문, 월계수 잎 등 일본을 상징하는 문양들을 써 왔던 곳들이다. 서귀포 중문초등학교는 월계수잎이 그려진 교기를 수정하면서 교표에 한라산과 마을의 수려한 자연물인 주상절리대를 그려 넣었다.
서귀포의 또 다른 토산초등학교는 월계수 잎 교표를 학교 명칭의 자음을 넣어 사람의 웃는 형상으로 교체했다. 귤 재배가 많은 마을의 특성을 반영해 나뭇잎과 귤색을 첨가했다.
한림여중은 1964년 개교 당시 만들어진 순결 교훈이 성적 편향성을 드러낸다고 판단, 긍정 ·창의·적극 등 현대 인재상에 부합하는 표현으로 교훈을 교체했다.
일부 학교는 ‘대한의 건아’ ‘굳세어라’ 등 구시대적인 교가 가사를 수정했다.
이번 일제 잔재 청산은 학교 구성원 간 공론화 과정이 충실히 이뤄졌다는 점에 의미가 더 크다.
중문초는 학생 대상 공모전을 통해 최종 디자인을 선정했다. 한림여중은 응모된 62개 교훈을 압축하고 최종 선정하는 과정에 학생자치회가 중심이 됐다. 그만큼 기간은 길게 소요됐지만 학생을 중심으로 교직원과 학부모, 동문까지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 교체에 따른 만족도를 높였다.
홍일심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는 “학교의 오랜 상징물을 바꾸는 작업이라 참여도가 낮을 줄 알았는데 많은 학교가 예산 지원을 신청해왔다”며 “특히 변경 과정에 공론화를 충분히 거치도록 독려했다”고 말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2019년 일제강점기 식민잔재 청산 조례가 제정됨에 따라 이듬해 도내 교육현장 잔재 청산 연구 용역을 시행하고 해당 학교에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