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취소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내국인 진료 문제를 놓고 도와 병원 측이 공방을 벌이는 사이 의료법 상 영업 개시 기한을 초과했다며 도가 허가를 취소하자 병원 측이 낸 소송에서 도가 패소한 것이다.
대법원 특별1부는 13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주식회사(이하 녹지국제병원)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판결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에 위법 등 특정 사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이번 소송은 2015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외국의료기관 사업계획을 승인받아 제주 서귀포시에 지상 4층 규모의 영리병원을 건립한 녹지국제병원이 제주도와 진료 대상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제주도는 영리병원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2018년 외국인 의료관광객에 한해 영업을 하는 조건으로 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그러자 녹지국제병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이 부당하며 이듬해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조건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는 사이 의료법이 정한 개원 허가 유효 기간(3개월)이 지나자 도는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병원 측은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소송’을 추가로 냈다.
이번 판결은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소송’에 관한 내용이다. 1심에서 재판부는 제주도의 손을 들었지만 2심에서 판단은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병원 측이)주된 이용 대상을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하면서도 내국인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원 준비를 마쳤는데 제주도가 허가 신청 15개월이 지난 후에야 진료 대상을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한정하면서 사업 계획의 수정과 인력 채용 같은 개원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 측에 내어 준 개원 허가는 유효하게 됐다. 영리병원 개설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남은 쟁점은 진료 대상의 범위다. 앞서 법원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제주도의 조건부 허가가 부당하다’며 녹지병원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소송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선고를 연기했었다.
한편 녹지국제병원은 서귀포시 동홍동·토평동 일대 154만㎡ 부지에 병원과 휴양콘도, 리조트를 건설하는 제주헬스케어타운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보건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을 승인한 후 국내 1호 영리병원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2018년 제주도는 숙의형 민주주의 공론화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공론화조사위원회는 ‘개설 불허’를 허가권자인 도지사에 권고했지만 원희룡 전 지사는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영리병원 개설 절차가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의료관광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제주도 내 영리병원 개설 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