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 바로세우기, 반의 반도 못했다” [인터뷰]

입력 2022-01-16 13:38 수정 2022-01-16 14:12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최현규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의회의 공격을 받는 ‘서울시 바로세우기’ 작업에 대해 “공조직 질서의 회복 과정”이라며 “목표의 반의반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최근 대규모 재건축 단지의 신청이 잇따르고 있는 신속통합기획에 대해선 “그동안의 갈증이 해소되는 정책적 접근”이라며 “수급의 생명수 같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달도 남지 않은 20대 대선의 경우 “중장기적 국가 비전이 실종된 대선이라는 평가에 대해 굉장히 안타깝다”면서도 “점차 국가적인 비전으로 승부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통합과 국부창출, 공정을 꼽으며 “‘이번 인생에서 계층 상승은 불가능’, ‘내 자식은 신분 상승이 어려울 것’이라는 좌절을 얼마나 보듬어내는 정권이 될 것인지가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1년 남짓의 임기 동안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당히 공격적인 시정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년 임기 시장이 4년 임기를 보장받은 시장과 같이 느긋하게 스케줄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시민 여러분께서 이해해주실 거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다시 서울시장에 나설 그를 지난 12일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며 내내 단호하게 생각을 털어놓았다.

-임기 1년여의 ‘소방수’ 시장으로 들어온 지 9개월이 지났다. 소회는.
“겨우 며칠 지난 것처럼 9개월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보궐선거로 들어온 시장의 운명은 결국 전임자의 업적을 잘 이어받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거다. 각종 예산과 조직 운영에서 문제인 것들을 바로잡고 있다. 그것이 이른바 서울시 바로세우기다. 또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향한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서울 비전2030 핵심 목표를 설정했다. 그동안 미래비전이 매우 미흡했는데 목표를 재설정함으로써 서울시라는 거대 조직이 목표를 공유하고 일사불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시 바로 세우기에 대한 진보진영의 반발이 있다.
“예산 측면에서는 시민단체를 표방하는 이른바 서울시 주변 기득권 단체에 무비판적으로 주어졌던 예산 운용 기조를 바로잡고 있다. 조직 측면에서는 기득권 단체들 출신 고위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대규모로 들어오면서 위축된 서울시 기조를 수정하는 중이다.

특정 단체 직원들이 평직원이 아닌 과장, 팀장, 국장급으로 영입되면서 서울시 직원들 입장에서는 기가 꺾일 수밖에 없는 인사가 꽤 많이 이뤄졌다. 이로 인해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고, 수동적인 조직으로 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기득권 단체들은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두고 협치 파괴라고 비판하지만 원래 공조직 질서의 회복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어느 정도 만족하나.
“서울비전 2030은 이미 마련해서 발표했으니까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서울시 바로 세우기는 목표한 것의 반의반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게 맞겠다. 아직도 시의회의 거의 90%를 점하고 있는 압도적 다수의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이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발표할 때마다 아주 저항과 비판이 비등했다. 굉장히 압도적인 화력이다 보니 결국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예산안 자체가 우리 목표의 절반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마저 시의회에서 절반도 관철되지 않았다. 절반밖에 담지 않은 예산의 절반이 또 잘려나갔으니 내 목표의 4분의 1정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에선 바로 세우기가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됐다는 불만이 있다.
“임기 4년의 시장이라면 사전 정지 작업도 하고 대화도 하고 이해를 통해서 바꾸는 것이 가능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제 임기는 1년 3개월뿐이어서 4년 임기를 보장받은 시장처럼 느긋하게 스케줄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시민 여러분께서 다 이해해주실 거로 생각한다.
또 아무리 의지나 목표가 하늘을 찔러도 의석의 90% 이상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 시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만들고 싶어도 힘든 상황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속도가 빠르다는 비판은 저는 동의하기 어렵다.”

-페이스북에서 ‘지못미(지켜주지못해 미안해) 예산’ 시리즈로 시의희를 또 비판하고 있는데.
“언론 입장에선 자극적인 제목을 붙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지만, 내용은 결국 지난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절반밖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입장에서 시민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다. ‘이런 정책으로 승부하고 싶었는데 어떤 건 90% 예산이 삭감돼 이런 형편입니다’라고 설명해 드리는 거다. 이런 설명을 하니 시의회도 나름 반박을 하고, 나도 재반박을 했다. 이런 공방을 거치면서 비로소 시민들이 깊이 있게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이 작업이 굉장히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번에 삭감된 예산을 추경(추가경정예산)이나 다음 시의회에 보내면 또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고 한두 달 전에 삭감했는데 왜 또 보내오냐’며 시의회가 반발할 거다. 그런데 공방을 거치면서 시의회 측의 글을 보면 ‘얼마든지 건전하게 시의회와 협의해서 추경 때 반영시킬 수 있는 걸 이런 식으로 비판하느냐’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런 걸 보면 즐겁다. 그냥 예산안만 보냈으면 굉장히 부정적이었을 텐데, 이런 문구를 보면 ‘아, 내가 정말 잘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결국 비전을 달성하는 것은 정책이고 결국 그 바탕은 예산이다. 예산이 깎이게 되면 날개가 꺾인다. ‘지못미 시리즈’는 길게 보고 하는 작업이다. 한번 해 놓으면 내년부터 쉽게 깎기 어렵다. 솔직히 ‘오세훈 공약 사항’이라고 사실 처음에 깎은 거다. 바람직한 행태는 아니다. 오세훈 공약이라도 몇 개는 옳은 게 있다. 왜 그게 100% 삭감당해야 될 정도로 터무니없는 거겠는가. 그러면 선거 때 압도적으로 지지해주신 유권자분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나. 그런 관점에서 이게 90% 예산 삭감될 사업인가 이런 것들을 판단을 구하는 과정이다.”


-TBS 출연금을 대폭 삭감했는데, 시의회에서 대부분 복원됐다.
“국감 답변 외에는 그동안 특정 프로그램(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스스로 문제 삼은 적이 없다. 다만 TBS의 존재 의미에 대한 방송국의 성찰이 있어야 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유일한 방송국인데 지금 가장 필요한 게 교통정보일까?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교통방송 듣고 운전하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처음 생겼던 취지가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거다. 스스로도 황금 시간대에 운전정보 말고 시사프로그램만 제공하고 있지 않나. 또 독립 법인화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 권리만 독립하고 의무와 책임은 독립하지 않으면 더 지독히 의존하게 된다.”

-재개발·재건축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 전례 없이 흥행하고 있다.
“그동안의 갈증이 해소되는 정책적 접근이기 때문에 그런 거 같다. 그동안 약 7년 정도 신규 지정된 재개발 지구가 아예 없었다. 이른바 건축·재건축·재개발 주택공급시장에서는 굉장한 갈증이 있었던 거다. 이런 적이 없었다. 비정상이다. 너무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정이 많아서 아 이제 속도 조절을 좀 해야겠다고 판단했을 때 혹시 1~2년 정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내가 지정해놓고 나간 300여개 재개발지구를 (박원순 전 시장이) 다 해제했다. (한참 생각하다가) 그게 그렇게까지 해제한 상태에서 하나도 더 추가지정을 안 했다는 것은 이건 정말 주택시장에는 아주 엄청난 타격인 거다. 그러다가 신속통합기획으로서 비로소 이제 어떤 수급의 생명수 같은 변화가 시작되는 거다.

아시다시피 국토교통부는 ‘목마르면 공공에서 주도하는 것을 받아라’라고 5년 동안 일관된 입장을 보였다. 시장은 그게 싫었다. 민간 주도로 하고 싶은데 ‘급하면 공공을 받아라’라는 건 일종의 강요다. 여기서 신속통합기획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니까 봇물 터지듯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토부에서는 신통기획에 대해 반대의견이 없나.
“없다. 당연히 경쟁 아닌 경쟁 관계다 보니 국토부에서 부정적인 시그널이 올 수도 있다고 짐작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전혀 없다.”

-국토부는 공공성 확보를 주문하고 있다.
“공공성을 확보해야 할 측면도 많다. 중요한 건 ‘소셜 믹스(단지 내 분양·임대 공존)’다. 과거 재개발·재건축 시 기존 거주민이 더 이상 거주하기 힘든 상황이 되는 게 가장 큰 부작용이었다. 그래서 공공기여분을 통해 소셜 믹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정책을 동원해왔고, 신통 기획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리고 재개발·재건축 후 얻는 상당한 재산적 이득이 온전히 토지주·건물주의 이익으로 돌아갔을 때 생기는 사회적 저항이 있다. 너무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적당히 줄이는 것 역시 확보해야 하는 공공성 중 하나다.”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까지, 코로나19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지금은 과도기고 전환기라고 평가한다. 사실 단계적 일상회복은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언론도, 여론도, 코로나19가 2년 이상 가니까 피로 현상이 극에 달했다. 어떤 형식으로든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이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했는데 방법론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 지나치게 속도가 빨랐다. 말은 단계적 일상회복인데, 급격한 일상회복을 추구하니 환자 수가 급증했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델타 변이하고 합해지면서 불편한 상황이 되자 다시 거리 두기를 강화한 게 지금 상황이다. 그런데 다음 단계의 파도는 더 심각하다. 오미크론 때문이다.

11일 전문가 10여분 모시고 대책회의를 했는데, 거리 두기를 조금만 풀어도 1월 말까지 오미크론이 50% 이상 점유하는 우세 종이 될 거라고 한다. 설을 전후해 푼다면 그래프를 보니까 일반적인 비례 그래프가 아니라 위로 확 꺾이는, 기하급수적인 그래프가 된다. 이 엄동설한 시기에 2~3시간 줄 서서 PCR 검사를 받는 시민들인데 그 줄이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다. 병상은 부족하고, 임산부가 구급차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이런 일이 또 빈발할 수 있다.
이번 주부터 팍스로비드(먹는 치료제)가 임상에 쓰이기 시작하는데, 일단 증상 악화의 속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하겠지만 이런 걸 감안해도 2~3월엔 상당히 확진자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2년 동안 우리는 계속 치료보다는 격리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경제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격리에서 치료로, 감기처럼 받아들이자는 식으로 가자니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는 게 지금이다. 그래서 고민이 매우 깊다.
어쨌든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가서 격리에서 치료로 개념을 바꾸고 가는 게 맞다. 이를 위해선 신속항원검사를 같이 도입해서 그동안에 금기시됐던 자가진단키트도 병행해야 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도 그게 논의가 되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질병청에서 막혀있다. 매우 완고하다. 질병청을 극복하지 않으면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할 수 없다.”

-대선 구도가 혼탁하다.
“어쨌든 선거라는 건 지지율이야 늘 출렁출렁하는 거다. 최근 또 한 분이 돌아가신 사건도 있었고. 잊을만하면 이런 충격적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번 대선이 이슈가 실종되고 중장기적 비전이 실종된 대선이라는 데 국민이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그런 의미에서 일희일비할만한 계기들이 반복적으로 생긴다 하더라도 결국엔 중장기적인 국가 비전으로 승부하는 대선으로 점차 바뀔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있다. 바람직한 토론이 이뤄지다 보면 어느 당이, 어느 후보가 가진 비전이 올바른지 경쟁하게 되면서 바람직한 대선으로 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 번째는 통합의 비전이다.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계층별로, 성별로, 연령별로 분할되었는지. 이런 고민을 하나로 통합해내서 긍정의 에너지로 변화시켜나갈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어떻게 이제 잘 살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부창출을, 경제 성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

성장 없는 복지는 사실은 공허하다. 많은 분이 마치 복지를 잘하면 경제가 성장할 것처럼 지난 5년간 해왔지만 그렇게 해서 어려워진 것 아니냐. 이른바 곳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가 두 번째 시대정신이 되겠다.

세 번째는 요새 젊은 사람이 관심 가지는 공정의 화두다. 공정, 상생, 이런 화두가 사회적으로 꽃을 피워서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사회를 만드는 거다. ‘내 이번 인생에서 계층 상승은 이미 불가능에 가깝다’, ‘내 바로 자식 대에서는 신분 상승이 어렵다’ 이런 좌절을 얼마나 보듬어 내는 정권이 될 것이냐는 게 공정과 상생의 문제다. 계층이동 사다리의 문제는 어떤 분들은 정의론으로, 어떤 분은 공정론으로 풀기도 하지만 결국 화두는 똑같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다.”

강준구 김이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