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았다’…낡은 산업이라던 섬유의 반전

입력 2022-01-16 09:01
섬유산업 그래픽. 출처 Pixaby

‘섬유 강국’은 옛말이 됐다. 수출액 기준으로 한국은 여전히 세계 10위권의 섬유 강국이지만, 속살을 들여다 보면 사정은 다르다. 섬유산업의 국내 생산 및 부가가치액은 2010년대 초반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인건비 비중이 큰 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국내 생산을 줄이거나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섬유는 ‘한물 간 낡은 산업’이라는 껍질을 깨고 날아오르는 중이다. 전통적 의류용 소재에서 산업용 소재 등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미래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1위를 다투는 첨단제품도 등장한다. 섬유업계는 ‘스마트 섬유’ 등 첨단제품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섬유기업인 효성티앤씨는 지난해 1~3분기 영업이익이 연결재무제표 기준 1조677억원이라고 16일 밝혔다. 전년 동기(1364억원) 대비 8배나 성장했다. 효성티앤씨의 주력 상품은 스판덱스다. 효성은 1989년부터 스판덱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3년간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은 뒤 1992년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1~3분기에 역대 최대인 영업이익 2499억원의 성적표를 받았다. 2020년 1~3분기(919억원)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주력 제품은 강도·내열성·내약품성이 뛰어나 5세대(5G) 이동통신 광케이블 등에 쓰이는 아라미드, 전기 자동차용 초고성능 타이어 소재로 쓰이는 타이어코드 등이다. 고부가가치 섬유제품이다.

첨단 섬유 산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는 추세다. 지난 2019년 효성첨단소재는 2028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연산 2만4000t의 탄소 섬유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우선 오는 7월까지 2차 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연산 6500t 규모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내년까지 구미공장 부지에 아라미드 섬유인 헤라크론(HERACRON) 생산라인을 현재 7500t에서 1만5000t 규모로 증설할 계획이다. 구미공장 총 투자액은 2300억원 규모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연구원들이 첨단 섬유를 개발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제공

국내 기업들은 이미 미래 성장엔진으로 고부가가치 첨단 섬유에 주목하고 있다. 섬유 유관 기관들도 지역 기업과 손을 잡고 활발하게 소재 연구·개발(R&D)을 전개한다. 박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동통신이 발전하면서 광케이블 소재 수요가 늘고, 선진국 위주로 안전·보호 분야 관심이 높아지면서 난연기능이 뛰어난 아라미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첨단섬유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외에 의류용 섬유의 경우 최근 탄소중립 바람을 타고 ‘친환경 섬유’도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재활용 폴리에스터 섬유는 일반 폴리에스터 섬유보다 단가가 비싸지만 환경보호에 효과적이라 소비자는 물론 기업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효성티앤씨의 재활용 폴리에스터 섬유 판매량은 2017년 대비 올해 10배 가량 급증할 전망이다.

여기에다 해외의 모피판매 금지법 제정, 유명 브랜드의 모피사용 중단 흐름에 따라 동물성 소재를 식물성 및 합성 소재로 대신하는 ‘비건 패션’도 몸집을 키우고 있다. 비건 패션산업은 2027년까지 연평균 13.6%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국내 산업이 고부가가치 섬유 위주로 옮겨가는 것이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의류용 원사나 섬유의 경우 해외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 등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다 보니 국내 섬유산업 전반에서 의류용 섬유 산업을 접고 고부가가치 첨단 섬유 위주로 옮겨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자회사 코오롱머티리얼은 2019년 전체 70% 수준의 매출비중을 차지하는 원사 사업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용 첨단 섬유를 미래 먹거리로 육성해 국내 섬유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R&D로 첨단 섬유소재를 생산하면, 중소기업들은 그 소재를 바탕으로 상품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을 통해 R&D 등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