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별개의 언론진흥 조직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위성곤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귀포시)이 제주지역 언론재단 설립 근거를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최근 제주도 산하 제주연구원이 현안 연구로 제주언론진흥재단(가칭) 조직 구상을 처음 구체화했다.
그동안 제주에서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공기관 광고를 대행하는 명목으로 언론사에 일괄 징수하는 수수료(광고액의 10%)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거리적 한계로 제주 기자들이 받는 혜택이 적다는 불만까지 겹치면서 별도의 언론진흥재단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대두됐다.
그러나 제주연구원이 내놓은 제주언론진흥재단 설계 방향은 논란이다. 언론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고유의 기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수료는 걷어가고 오는 혜택은 적고”
제주지역 언론인들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광고사업을 대행하며 광고 총액의 10%를 수수료로 가져가면서도 지역에 주는 혜택은 적다고 입을 모은다.
수수료를 뗀 광고액마저도 광고 게재 후 수개월이 지나 해당 언론사에 지급함으로써 진흥재단이 오히려 언론사를 어렵게 한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제주의 경우 재단 핵심 사업인 기자교육을 육지부(광주사무소)로 나가 받아야 해 실제 교육 참여 기회부터 다른 지역보다 제한되는 상황이다.
제주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제주언론진흥재단(가칭) 설립 타당성 분석’ 연구 보고서에는 이 같은 지역 언론인들의 불만이 잘 드러난다.
연구원이 지난 9월 도내 매체 유형별 언론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자기기입식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72%가 현행 한국언론진흥재단 정부광고 수수료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가 제주지역 언론진흥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대답도 72%나 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추진 사업이 제주지역 언론진흥에 기여하느냐’는 물음에는 언론지원사업 64%, 언론공익사업 62%, 언론역량강화사업 59% 등으로 ‘기여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응답이 더 많았다.
설문에선 언론인이 생각하는 지역 언론의 문제점에 대한 문항도 포함됐다.
‘제주도민이 지역 언론과 지역사회 현안에 관심이 낮은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59%가 ‘지역뉴스 콘텐츠의 획일화’, 49%가 ‘기관 중심의 기사 생산’을 꼽았다.
경영 악화가 기관에서 내는 보도자료 중심의 획일화된 보도 행태로 이어지면서 지역 언론이 도민 관심에서 멀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응답자들은 이에 따른 ‘제주지역 언론진흥 정책 방향’으로 ‘다양한 지역뉴스콘텐츠 생산 유도(67%)’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으로 ‘기자역량지원(31.5%)’ ‘기획취재지원(28.0%)’ ‘뉴스콘텐츠 유통 지원(19.5%)’ ‘언론사 지원(18.0%)’ 사업을 꼽았다.
연구원이 제시한 제주언론 진흥 방안은
연구원은 이 같은 언론 종사자 수요조사 등을 토대로 제주언론진흥재단(가칭)을 설립해 ‘경쟁력있는 뉴스 생산 지원’과 ‘뉴스 콘텐츠 유통구조 개선’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관 형태로는 제주도 산하 재단법인 설립을 제시했다. 경영본부, 미디어본부, 유통지원본부 세 개 조직에 제주도지사가 임면하는 대표이사를 포함해 26명 규모의 인력 운영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연간 총 운영 예산은 인건비 10억원과 사업비 36억원을 합쳐 총 46억원으로 산정했다. 예산 조달 방안으로는 정부광고수수료, 기업광고수수료, 공공기관 출연금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정부광고 수수료는 언론 매체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방 공공법인에서 광고를 받을 때 광고비의 10%를 제주언론진흥재단이 받아 확보하는 방식이다.
현재 언론광고 수수료는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가져가고 있다. 연구원은 제주특별법 제도 개선을 통해 정부광고 수수료를 제주 재단으로 가져와 운영 재원으로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기업광고 수수료는 제주형 뉴스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만들어 그 안에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을 기여도에 따라 언론사에 차등 배분하는 구조로 제시했다. 연구원은 배분 기준으로 언론사별 뉴스콘텐츠의 조회 수 등을 제시했다. 나머지 필요 재원은 제주도의 출연금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 될 수도”
연구원의 이 같은 구상 안에 우려가 제기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체제의 미비점을 보완하며 제주 언론을 진흥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적 고민이 빠졌기 때문이다.
우선 제주도 산하 재단법인 형태를 두고 언론의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구원은 제주언론진흥재단의 운영 방식에 대해 직영, 민간 위탁, 공공기관 출연을 검토했다.
‘직영’은 제주도에서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다. 재원 및 인력 조달이 원활하지만, 제주도 인력을 활용할 경우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 운영에 한계가 있고 경직적 운영이 문제가 될 것으로 봤다.
‘민간 위탁’은 민간단체에 위임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기관 운영의 자율성과 창의적 기획, 전문성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위탁 주체에 따른 운영 능력의 편차가 크고 운영 채산성 확보가 어려우면 수익 사업 수수료를 과다 산정해 당초 제주언론진흥재단의 운영 목적인 공익적 측면이 훼손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지역 언론사가 직접 제작한 뉴스콘텐츠 유통 과정에서 중립성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공공기관 출연’은 도 직영과 민간 위탁의 절충 방안으로 재단 자체가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원은 공공기관 출연 방식이 제주도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이나 민간 위탁에 비해 예산 확보가 용이하고 정치적 중립성 훼손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다. 운영의 상대적 자율성과 전문성 제고, 책임성 확보 및 집행·사업관리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봤다.
그러나 제주 조직 설립과 관련한 이번 논의가 근본적으로 지역 언론의 경영 어려움에서 출발한 점을 고려할 때 도지사가 인사권을 쥔 조직이 언론사에 대한 예산 지원을 담당하는 구조는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업광고 수수료 배분 기준도 논란이다.
연구원은 제주언론진흥재단이 도내 언론사가 다양한 뉴스를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생산된 뉴스콘텐츠를 주민들이 제주언론진흥재단 플랫폼을 통해 조회·구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구상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언론진흥재단은 광고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수익을 일정 기준에 따라 언론사에 배분하도록 했다. 언론사에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는 저작권료 형태의 전재료를 지급하는 모델과, 기여도에 따라 차등 배분하는 광고 수익 모델 두 가지를 제시했다.
두 방식 모두 지급 기준과 규모의 적절성을 판단할 기준이 모호하다. 특히 광고 수익 모델은 클릭 수를 기준으로 기여도를 판단할 가능성이 커 언론사들이 속보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
‘포털 체제’에 갇힌 언론들이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면서 질 낮고 선정적인 기사가 난무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제주 뉴스를 특정 사이트에 모아 제공하는 플랫폼 방식이 이용자들의 뉴스 소비 추세에 부합할 지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도내 언론사들이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10% 광고 수수료율에 대한 인하 논의도 빠졌다.
언론인들은 “논의의 출발은 재단의 과도한 광고 수수료율과 집행 방식, 지역 언론에 대한 지원 부족에 있다”며 “언론의 예산 줄을 언론이 감시해야 할 지방 정부가 갖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제주만의 독자적인 언론진흥 조직을 만든다면 지원 범위를 보도 지원으로 한정하고, 지방권력과 언론사의 유착을 막을 수 있도록 인적 구성과 지원 기준을 철저히 공정성과 공익성에 맞춰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연구원 측은 “자체 예산으로 짧은 시간에 진행한 내부 과제 연구였다”며 “제주언론진흥재단의 구체적인 설계는 별개의 용역으로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 재단 설립 움직임과 관련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별도의 제주 재단 설립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관계자는 “2020년 12월과 지난해 1월 두 차례 제주도 및 제주도기자협회 관계자를 만났다”며 “당시 제주 언론인을 위해 특화된 연수 및 교육 프로그램 개설과 제주지사 설립 내지 지소 개설은 지원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