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유럽 국가가 코로나19 변이인 오미크론의 유행 국면에서 방역 제한조치를 완화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신규 확진자 수가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음에도 입원 환자·사망자 수가 비교적 안정화됐다는 판단에 방역 정책의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방역 초점 확진자 수→ 입원 환자·사망자 수로
덴마크 의회 감염병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문화·여가생활 부문의 방역 조치를 16일부터 완화하기로 했다. 덴마크에서 콘서트홀, 영화관, 동물원, 테마파크, 문화센터, 스포츠시설 등의 개장이 약 한 달 만에 허용되는 것이다. 덴마크는 앞서 지난달 19일부터 오미크론 영향으로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이들 시설의 운영을 제한했다.
덴마크의 최근 일일 확진자 수는 2만명을 넘나들며 역대 최다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누적 확진자 수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가 580만명이란 점을 생각하면 인구 6명 중 1명은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셈이다.
덴마크 방역 당국의 이 같은 판단은 낮은 입원 환자 수와 사망자 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확진자 수는 늘었지만 위중증 환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고강도 방역 지침이 장기화되며 반발 여론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렌 브로스트롬 덴마크 보건청장은 “현재 우세종인 오미크론 변이는 중증 진행률이 낮다는 것이 훨씬 확실해지고 있다”며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보다는 상황이 괜찮다”고 밝혔다.
스위스는 코로나19 확진·확진자 밀접접촉 등에 따른 격리 기간을 기존 10일에서 절반인 5일로 줄이기로 했다. 백신 접종 완료자나 4개월 이내에 코로나19에서 완치된 사람은 격리 의무 자체가 면제된다.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가 급증해 보건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자 지침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는 코로나19 밀접접촉자의 자가격리 의무를 해제하기로 했다. 나이트클럽 운영 금지, 실내 행사 참여 인원 제한, 식당·주점 영업시간 제한 등 방역 조치도 조만간 해제될 전망이다.
에이먼 라이먼 환경기후공보장관은 “2월부터는 방역 조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문가들은 지금의 유행기가 길지 않으리라고 본다. 입원 환자 수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면 방역 조치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영국 스코틀랜드는 대규모 실외 모임 행사의 인원수를 500명으로 제한하던 방역 정책을 오는 17일부터 철회한다. 프로축구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SPL) 경기 직관도 가능한 만큼 현지 축구 팬들이 반기고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 제1장관은 방역조치 완화를 결정한 배경으로 “불확실성에도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고개를 든다”며 “크리스마스의 방역 정책과 국민이 보여준 책임감, 부스터샷 접종률 상승 등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도 영국발 여행객을 대상으로 적용했던 입국 제한 조치를 조만간 철회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영국발 국내 입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여행 사유를 제출하도록 하고, 7일 동안 자가격리를 의무화했다. 격리 중에 음성이 확인돼야 48시간 만에 격리를 해제해 주는 방식이다.
터키 역시 입원 환자 수에 초점을 맞췄다.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무증상 밀접접촉자의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를 완화했다. 또 백신 접종 완료자는 자가격리를 면제하고 확진자는 7일간의 격리에서 해제될 때 PCR 검사를 받지 않도록 했다. 터키의 최근 일일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한 달 만에 4배로 증가했지만, 입원 환자 수는 같은 기간 10% 증가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아닌 엔데믹으로 봐야”
코로나19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아닌 ‘엔데믹’(풍토병화) 단계로 진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코로나19를 풍토병으로 판단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밝힌 세계보건기구(WHO)의 입장과 대치되는 부분이다.
앞서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라디오 방송에서 코로나19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독감처럼 다루자고 제안했다. 영국 나딤 자하위 교육부 장관도 자국이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길에 있다고 선언했다.
알랭 베르세 스위스 내무부 장관 역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에 서 있을지 모른다”며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