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의 대통령 후보를 필두로 정치권이 기존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하며 금융권은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정말로 기본대출이나 추가 이자제한같은 공약들이 이뤄진다면 수십년간 쌓아온 금융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감도 엄습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 시리즈’ 공약 중 금융권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기본 대출’이다. 1000만원 내외의 금액을 장기·저금리로 빌려주겠다는 공약이다. 이 공약이 실현되면 누구나 신용점수에 관계없이 설정된 금액을 저금리로 은행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1000만원이라는 기준은 전 국민의 대부업 평균 이용 금액인 900만원을 참고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주당은 최근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두 차례에 걸쳐 입법예고했다. 김주영 의원 등 14명이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15% 안팎으로 낮추겠다고 했고, 서일준 의원 등 12명은 현재 최고 연 20%인 최고이자율을 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지난해 5월 적정 최고금리는 연 11.3~15.0%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공약도 파격적이긴 마찬가지다. 윤 후보는 초저금리 특례보증 대출 50조원을 지원해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또 현재 자영업자는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을 통해 최대 원금의 75%를 감면받을 수 있는데, 이것을 금액에 따라 9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빚을 무상으로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윤 후보의 신혼부부·청년을 대상으로 한 ‘담보인정비율(LTV) 완화’ 공약도 눈길을 끈다. 특정 계층에 대해 LTV를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금융권의 가장 큰 걱정은 이런 공약을 발표하는 것은 정치권일지라도 결국 책임지는 건 금융회사들이 되리라는 것이다. 실제 이 후보는 “빚에 몰린 사람의 최후 보루는 대부업체가 아닌 국가여야 한다”며 국가책임론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접적으로 국가에 속해있는 금융기관만으로 막대한 대출수요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시중은행을 압박해 전용 상품을 만들거나 위탁판매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점차적으로 떠넘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이 같은 공약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등급에 따라 한도·금리 차이가 나는 건 차주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평균적인 손실 비용을 균등하게 안고 가기 때문”이라며 “이런 점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모두에게 저금리 대출을 적용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LTV 80% 공약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현재 은행권 평균 LTV가 40% 정도인데, 이걸 갑자기 배로 끌어올리면 집값이 급락하는 시기가 왔을 때 그 손실을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서민들을 배려한다는 취지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금융 포퓰리즘이 서민을 금융절벽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신용에 관계없이 기본대출을 내주게 되면 결국 은행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고, 이들은 제2금융권, 대부업 등으로 몰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이자제한법까지 함께 작동하면 제2금융권들도 중신용자 이상에만 대출을 내주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대출금리가 2014년 34.9%에서 2021년 20.0%까지 내려가는 동안 대부업 이용자 수는 267만9000명에서 123만명으로 반토막 났다. 등록된 대부업에서 밀려난 이들 중 상당수는 미등록·불법 사채시장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