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부터 131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가 생긴다. 노동자 대표가 기업 이사회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함께 내리며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10일 열린 올해 첫 국회 본회의에서는 ‘노동이사제’ 도입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노동자 대표가 추천하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비상임이사 1명을 반드시 이사회에 두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정기국회 처리를 요청한 데 이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도입에 뜻을 같이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이사는 3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가 맡을 수 있다. 임기는 2년이며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기업 36곳과 국민연금공단,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준정부기관 95곳(통폐합된 한국광해관리공단 제외) 등 131곳이다.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일부 금융 공공기관도 포함된다. 다만 한국산업은행이나 중소기업은행, 한국예탁결제원 등은 기타 공공기관이므로 법적 대상은 아니다.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돼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도입 기관은 개정안 시행 전 노사 합의와 주주총회 등을 거쳐 구체적인 이사 선임 절차를 마련하고, 노동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 도입 기관들과 노동이사의 자격 요건 등 구체적인 노동이사제 도입 절차를 논의하고 관련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공기관 고질적 문제, ‘낙하산’ 인사 막을까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노동계는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공기관이 사업 계획과 예산 등 주요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데 노동자 목소리가 반영될 길이 공식적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노동이사는 이사회에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낙하산 인사 등 공공기관의 불합리한 경영 관행을 개선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우리 사회가 노사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대화를 통한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이어 “폐쇄성과 비민주성을 걷어내는 것으로, 그 방법이 바로 노동자의 참여이고 국민의 견제이며 그 시작이 바로 노동이사제”라고 밝혔다.
경제단체들, 비판 성명…“민간에도 넘어올라”
재계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질 수 있고, 노동이사제가 자칫 민간부문으로 확대되면 기업 경영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강성 노조가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공공의 이익은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기업 도입 압력으로 이어지면 가뜩이나 친노동정책으로 인해 위축된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반대 의사를 전했다. 경총은 “(노동이사제가) 우리나라 경제시스템과 부합하지 않고, 이사회가 노사갈등의 장으로 변질돼 신속한 의사결정을 저해할 수 있다”며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사회적 합의 없이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박재근 산업조사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공익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데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