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자 30여년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6월의 어머니’로 불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이 11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렸다. 지난 9일 타계한 배 여사는 망월묘역(묘비번호55번)에 묻힌 아들 이한열 열사의 곁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이날은 배 여사의 음력 생일로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 속에 치러진 조선대병원 배 여사 영결식장에는 생일케이크가 놓였다.
재야인사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한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빈소가 차려진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가졌다. ‘못다 이룬 어머니의 꿈,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 30여개가 발인식장을 장식했다.
발인을 끝낸 유해가 운구차로 옮겨지자 유족들은 “엄마” 등을 외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오열했다.
발인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고인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차량을 선두로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으로 유해를 운구해 1시간여동안 노제를 치렀다.
장례위는 당초 5·18 민주광장까지 만장·도보 행렬이 뒤따르는 시민참여형 노제를 가지려고 했다가 코로나19 여파를 고려해 유족과 장례위 인사 등 100여명 만 참여하는 약식으로 축소했다. 추도사와 추모곡으로 꾸민 노제는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연세민주동문회 이인숙 회장의 연보낭독을 시작으로 한 노제는 한동건 상임장례위원장(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배 여사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상영으로 이어졌다.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대표와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전남추모연대 박봉주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추도사에서 “잔인한 국가폭력에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워 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한평생을 편한 집 대신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며 “어머니의 걸음걸음이 민주의 길이 되었고 시대의 이정표가 됐다”고 추모했다.
고인의 장녀 이숙례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엄마나 내 엄마여서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절절한 인사말을 전했다.
사회장은 이한열 열사 모자와 각별한 인연을 쌓아온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인사말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우 의원은 1986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연세대총학생회장으로 이한열 열사의 장례행사에서 영정을 직접 들기도 했다.
노제를 마친 배 여사의 유해는 지산동 자택을 들른 뒤 유족들의 뜻에 따라 망월 8묘역에 안치된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산화한 아들을 따라 민주화에 헌신한 배 여사가 안장되는 묘역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이병섭(1999년 4월 별세)씨의 곁이자 1㎞ 정도 거리인 아들 이한열 열사의 묘소를 마주보는 곳이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 퇴원했다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그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숨진 이후 35년여간 민주화·인권 운동 등에 헌신했다.
2020년 6월 배 여사의 민주화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오후 배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광주 동구는 배 여사가 1970년부터 50년 넘게 거주해왔고 이한열 열사가 4살부터 대학 진학 때까지 청소년기를 보냈던 광주 지산동 자택을 ‘역사교육관’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