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공감 능력이 부족한 아이

입력 2022-01-11 09:25

초등학교 4학년 J는 수업시간에 자신이 관심 있고, 잘 아는 내용이 나오면 상황을 살피지 않고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 쉬는 시간 종이 울렸는데도 질문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 친구들의 빈축을 산다. 선생님도 처음에 기특하게 생각하고, 친구들도 ‘아는 게 많은 똑똑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이젠‘별나고 잘 난척하는 아이’로 인식되어 친구들도 차츰 J를 멀리한다.

이런 성향은 어려서부터 계속되었다. 한글도 일찍 깨치고 책을 좋아하여‘곤충 박사’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곤충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어 처음엔 친구들이 호기심을 갖고 다가왔지만 지루할 만큼 곤충에 대해서만 떠들어 대니 친구들도 차츰 멀어졌다. 학교에 들어간 후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독서 교육 열풍이다. 어려서 한글을 깨치고 스스로 독서하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부모들의 노력이 대단하고 이를 위한 사교육 시장도 활황인 듯하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요즘 아이들은 지식이 풍부하다. 하지만 언어적인 이해에 비해 비언어적(표정, 분위기, 제스쳐 등)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현저히 부족하다. 문자적인 이해력 좋아졌지만 사회적으로, 맥락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나 소 근육 발달, 운동기능 발달은 부족하다. 기능의 불균형이 심해지는 추세다. 후자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중요하고 실용적인 지능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하려면 언어적인 이해능력, 어휘력보다는 상대의 감정, 생각, 표정을 캐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J와 같은 아이를 ‘눈치 없는 아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런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친구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아 자신의 얘기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이면 말하는 것을 중지해야 하는데 말로 “듣기 싫어”“그만해”하기 전에는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거다. 사회성 부족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애착과 상호주관성의 발달과 함께한다. 애착은 개인 간의 정서적 유대감이다. 상호주관성이란 개인과 개인의 마음의 공유이다. 즉 엄마와 아이가 각자의 마음 상태를 공유 하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어떤 대상이나 상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며, 엄마 또한 아이의 감정을 공유한다. 아이는 이런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데, 생후 9개월 만 되면 아이들은 자기에게도 마음이 있고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12개월이 되면 엄마의 얼굴 표정이 주는 메시지를 파악한다. 눈치가 생기는 거다. 사회성 발달의 단초가 된다.

이에 대한 실험이 있다. 아이에게 투명한 다리를 건너 원하는 물건을 가지러 가게 했다. 이때 엄마의 표정이나 감정에 따라 아이의 행동이 결정된다. 엄마가 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바라본다면 아이도 엄마의 마음을 참고로 하여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다. 반면 엄마가 얼굴을 찌푸리거나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면 아이도 불안해 다리를 건널 수 없다. 상대의 의도, 주의 초점, 감정을 공유할 정도의 눈치가 가능해지는 것은 만 2세 경이다. 이때 아이들은 엄마가 금지하는 행동을 언어 없이 엄마의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성장하면서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언어로 읽어 주고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는 걸 배운다. 자신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은 상대의 감정을 알고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역지사지가 가능해지고, 공감능력도 생기는 거다. 그리고 또래, 어른들과의 관계 경험을 하면서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기술을 익힌다. 이런 발달과정의 중요한 단계에서 결핍이 생길 때 눈치 없고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가 되기 쉽다.

하지만 때로는 타고나기를 눈치, 공감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스퍼거 장애(자폐 스펙트럼장애)이다. 이럴 때는 촉각, 청각 등의 감각적인 특이성, 둔한 운동 신경, 강박성향, 산만하거나, 충동적인 특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