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만났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헤어졌다. 서로 각자 할 말만 쏟아내며 논의는 계속 평행선을 달렸다. 양측이 대화를 지속하기로 한 점이 긴장 고조를 막을 유일한 옵션이었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이끄는 양국 협상단은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8시간가량 회담을 진행했다.
셔먼 부장관은 회담 뒤 전화 브리핑에서 “솔직하고 담백한 논의를 했다. (러시아의 안보 보장 요구에 대해) 긴장 완화 없이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이며 성공적인 외교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아주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 금지 확약 등에 대한 러시아 요구를 일축했다는 것이다.
셔먼 부장관은 “우리는 가능성 없는 요구를 반대하는 데 확고했다. 누구도 나토의 개방정책을 닫아버리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랴브코프 차관은 회동 후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미국 동료들에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어떠한 계획이나 의도도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모든 군사력 준비 조치들은 러시아 영토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도 설명했다”고 말했다.
랴브코프 차관은 “러시아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토 비확장은 러시아의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문제이며 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더는 연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수개월째 대내외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자신들 입장만 되풀이한 셈이다. 로이터통신은 “양국이 회담 후에도 전혀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견을 좁혔다는 징후는 없다”고 평가했다.
미 언론은 양국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느린 대화라도 침략보단 낫다. 어떤 외교적 돌파구도 나오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요구 사항을 확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라브코프 차관은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보진 않는다. 제네바 협상의 유익함은 처음으로 우리가 이전에도 보이지 않게 존재했던 문제들에 관해 얘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외교(협상)가 계속 안보와 안정을 강화하길 지지한다. 이 문제에서 합의를 위한 기반은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도 양국이 계속 협상을 진행하기로 한 점을 평가했다. 셔먼 부장관은 이날 만남에 대해 “협상이 아닌 논의였다. 서로의 우선순위와 우려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랴브코프 차관도 “불장난이 왜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지 설명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양국은 12일 NATO와 러시아, 13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러시아 간 회담에서 다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를 이어간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