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순직 방치, 더는 안돼”…소방관들 “직접 조사하겠다”

입력 2022-01-10 18:28 수정 2022-01-10 18:34
지난 6일 경기 평택시 한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3명에 대한 합동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관들이 헌화하고 있다. 경기사진공동취재단

경기도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로 소방관 세 명이 순직한 사고와 관련해 화재 감식과 별도로 ‘순직 진상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소방관 사망 원인 조사를 소방청에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소방관 노조는 소방관이 직접 해당 조사에 참여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소방노조)은 청와대와 소방청에 이번 사고와 관련한 ‘노정(勞政) 합동조사단’을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한 소방관계자는 “소방관 순직은 지금껏 ‘인명 피해’로 쳐주지 않았다”며 “소방관이 직접 참여해 현장 목소리를 담은 대응체계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민간인 인명 피해가 없는 사고의 경우 소방관이 현장에서 사망하게 된 과정에 대한 별도 조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 민간인 인명 피해를 중심으로 현장 조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 사고처럼 일반인 피해가 없는 경우에는 발화 원인에 대한 감식이 이뤄질 뿐, 소방관이 순직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노정 합동조사단이 꾸려지면 현장 위험불감증에 대한 실질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장 실무자 관점과 지휘부 판단이 다를 수 있어 현장 대원이 직접 논의할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이번 요구가 받아 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앞서 청와대는 소방청에 화재 재발 방지책을 포함해 소방관 순직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당시 소방관 1명이 순직한 지 6개월 만에 유사한 참극이 재발하자 조사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1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소방청 앞에서 열린 평택 냉동창고 소방관 순직 관련 추모제 및 소방청 규탄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냉동창고 화재처럼 면적이 넓은 신축 건물 공사장은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물질이 많아 접근에 신중해야 하지만 현장 지휘부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내부 지적이 많다.

한 소방관계자는 “재발화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현장 대원을 재투입했다”며 “라이트라인(동선 추적 장비) 지급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직후 소방대원들은 세 차례 인명 수색을 마쳤지만 “3명이 남아 있다”는 공사 관계자의 말에 구조팀 5명이 재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현장에 추가로 구조할 사람은 없었지만, 불길이 다시 확산된 바람에 소방관 3명은 끝내 탈출하지 못했다.

이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세종시 소방청 앞에서 규탄집회를 개최하고 “현장 경험이 없는 지휘관이 빚은 대참사”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사고 당시 지휘라인에 순직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도 요구했다. 4개 단체가 모인 소방노조 연합은 조만간 노정 합동조사단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같은 날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화재 원인을 밝히고자 유관기관과 합동 감식에 나섰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