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술 안 줘” 모텔 불 질러 3명 사망, 징역 25년 확정

입력 2022-01-10 07:31 수정 2022-01-10 09:52

술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모텔 객실에 불을 지른 끝에 3명을 숨지게 한 70대 남성이 징역 25년을 확정받았다.

이 남성은 범행 당시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고, 인화물질이 필요하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보호관찰관의 특별준수사항을 받은 상태였다. 법원은 그가 과거에도 반복해서 방화 범죄를 저질렀고, 집행유예 기간에 같은 범행을 저지른 점을 감안해 중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조모(71)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조씨는 1심에서 혐의를 부인했고, 2심이 징역 20년에서 25년으로 형을 높이자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조씨는 2020년 11월 25일 새벽 2시40분쯤 자신이 2개월여 투숙해온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모텔에서 주인에게 술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그는 앙심을 품고 객실에 라이터로 불을 질러 다른 투숙객들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미리 주워둔 책과 자신의 옷 등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객실과 모텔 전체에 불이 번지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모텔에 있던 투숙객 14명 중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 등으로 숨졌다. 조씨의 난동을 말리던 모텔 주인 등 5명도 다치거나 일산화탄소 중독 등의 상해를 입었다. 범행 당시 조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조씨는 불이 난 뒤 혼자 도망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인근 편의점에 가서 ‘배가 아프니 119를 불러 달라’고 말한 뒤 구급차를 타고 가던 중 자백해 경찰에 체포됐다.

조씨는 현주건조물 방화미수죄로 이미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세 차례 선고받은 상태였다. 이번 범행은 집행유예 및 보호관찰 기간 도중 저지른 것이었다.

조씨는 1심에서 자신이 모텔에 불을 지르지 않았고 불을 질렀더라도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처지를 비관해 불을 냈는데 불길이 커지고 연기가 밀려와 죽을 것 같아 도망 나왔다’ ‘서울서부지검에 자수하러 갔다가 문이 잠겨 있어 경찰서를 찾던 중 편의점에 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조씨의 자백 내용은 방화의 구체적인 방법, 이후의 상황 등에 관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라며 “범행 당시 모텔에 숙박하고 있는 사람이 다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조씨는 항소심에서는 입장을 달리해 혐의를 인정했지만 형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결론은 1심보다 더 무거운 징역 25년이었다. 조씨가 동종 범행 전력이 3차례나 있고,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기간 중 이번 범행을 벌인 데 따라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호관찰관이 조씨에게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고, 인화물질 등이 필요하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특별준수사항을 부과한 상태였던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새벽에 불을 지른 후 도주하다가 인근 편의점 종업원에게 단지 본인이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119 신고를 부탁했을 뿐”이라며 “피해 확대를 막기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모텔 주인인 피해자는 형편이 어려운 피고인에게 두 달 넘게 숙식을 제공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곤히 잠들었을 새벽 시간이라 더 참혹한 결과가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며 형을 가중한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징역 25년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형을 그대로 확정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