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에서 촉발된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의 실상은 내부 경제적 불안과 소수 특권층에 대한 분노가 낳은 결과였다.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시위로 드러난 소수 특권층의 ‘검은 돈’을 언급하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소수 특권층에 축적된 막대한 재산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반정부 시위에 반영됐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해 카자흐스탄 유력 인사들이 영국에 5억3000만파운드(8600억원) 가치의 부동산 34곳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29년간 카자흐스탄을 장기 집권했던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2019년 3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줬으나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존 헤더쇼 엑서터대학 교수는 “대부분이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일가나 지도층 고위 측근과 연결돼 있다”고 전했다. 실제 카자흐스탄 출신 인사들의 영국 내 부동산 매입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사위 티무르 쿨리바예프는 2007년 영국 앤드루 왕자의 신혼집을 시세보다 300만파운드나 많은 1500만 파운드(245억원)에 구매했다. 2020년에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딸 다리가 나자르바예바와 손자 누랄리 알리예프가 영국에 8000만 파운드(13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한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원유와 우라늄 등 막대한 천연 자원을 보유해 중앙아시아 최대 부국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빈곤율이 5%에 이를 정도로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천연자원의 더 나은 분배와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 부패를 해결하겠다고 거듭 약속했지만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카자흐스탄 내무부는 이날까지 소요 사태 가담자 5135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지금까지 시위대 사상자는 50명을 넘어섰고, 진압 군경 가운데서도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전·현직 대통령 등 정치 엘리트 간 권력 다툼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세력이 이번 사태와 연관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근 카자흐스탄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카림 마시모프 전 KGB 위원장과 사마트 아비쉬 KGB 제1부위원장을 ‘국가반역 혐의’로 체포했는데, 둘 모두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측근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 의장이던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해임하고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 오른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의장 자리에서 내려온 건 자발적인 결정”이라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