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소액주주’ 울린 오스템 횡령, 공범 가능성 제기

입력 2022-01-06 11:31 수정 2022-01-06 14:28
경찰은 회삿돈 1880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모(45)씨를 5일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모씨가 6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

회삿돈 1880억원을 횡령한 뒤 도주했다 체포된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 이모씨(45)의 가족들이 “윗선의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의 범행 동기와 공범 여부를 파악하고 빼돌린 자금을 추적·회수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윗선’이 개입됐다는 이씨 가족의 진술까지 나온 만큼 공범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 "윗선 지시" 주장…공범 가능성 열어둬

경찰은 5일 경기도 파주 이씨의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던 중 오후 9시10분쯤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은신하고 있는 그를 발견해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후 6일 0시45분쯤 서울 강서경찰서로 압송했다.

이씨는 2018년 오스템임플란트에 입사해 자금 담당 부서에서 팀장으로 근무했다. 업무 중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잔액 증명 시스템을 매뉴얼하게 조정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오스템임플란트 측은 이 직원이 단독으로 진행한 횡령 사건이라고 밝혔지만, 이씨 가족들은 그가 체포되기 전 주변에 “윗선의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경찰 수사의 초점은 범행 동기와 공범 여부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횡령액이 19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인 만큼 경찰 내부에서도 공범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이씨는 현재 대부분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횡령한 1890억원은 이 회사 자기자본 대비 91.81%에 해당한다. 상장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다고 알리고 오스템임플란트의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씨는 잠적 직전 본격적인 신변 정리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30일 아내, 여동생과 함께 설립한 부동산 업체의 사내이사에서 내려온 것이 시작이다.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잠적 이틀 전인 28일까지 6차례에 걸쳐 한국 금거래소 파주점에서 1㎏짜리 금괴 851개를 구매해 6차례에 걸쳐 수령했다. 현재 금괴 1㎏은 8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이씨가 사들인 금괴의 가치는 68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씨가 빼돌린 횡령금을 여러 계좌로 분산 송금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 외에 이씨가 잠적하기 직전 수년간 소유했던 경기 파주에 있는 건물을 부인과 여동생, 처제 부부에게 1채씩 총 3채 증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자금 횡령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

4일 오전 강서구 오스템인플란트 본사. 연합

소액주주 날벼락… 집단행동 준비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만9856명의 소액주주는 날벼락을 맞게 됐다. 거래 정지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오는 3월 감사보고서에서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으면 상장 폐지 사유가 발생한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달 31일 이씨를 업무상 횡령(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고 이달 3일 공시했다.

시가총액 2조원이 넘는 코스닥시장 대표 우량주에서 개인의 단독 범행으로 이뤄진 횡령인 만큼 투자자들 사이에선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한 주주는 포털사이트 종목토론 게시판에 “동네 편의점도 몇만원이 없어지면 아는데 시총 2조원 회사에서 1900억원이 빠져나가는 걸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가까스로 횡령 금액을 회복해 거래를 재개한다고 하더라도 주가 하락 등 주주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도 가시화되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이날 홈페이지에 배너를 띄워 피해 구제에 동참할 소액주주들을 모집하고 나섰다. 김주연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이 사건은 단순한 횡령을 넘어 부실 공시나 회계 부정의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