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 이모(45)씨가 회삿돈 1880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대해 금융당국과 은행권 등이 ‘뒷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시가총액 2조원가량의 코스닥 20위권 상장사에서 직원 1명이 수개월간 거액의 자본금을 빼돌려 썼는데 사내 자체 감시는 물론 금융감독·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오스템임플란트는 뒤늦게 “경영 활동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의문은 2000억원에 가까운 수상한 자금 흐름을 해당 회사뿐 아니라 금융당국, 은행권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씨는 잔액증명서를 조작해 회삿돈을 여러 계좌에 나누어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다. 거액을 회사 계좌에서 개인 계좌로 자유롭게 인출하는 동안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의심거래보고’ 감시망은 작동하지 않았다. FIU는 금액에 상관없이 ‘불법 재산이나 자금세탁으로 의심되는 금융거래’ 등에 대해 금융사로부터 통보받고 있다.
이씨가 횡령한 돈으로 주식을 대량 매입했던 시점에도 감시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1일 동진쎄미켐 주식 1430억원어치를 갑자기 사들이며 공시 대상이 됐다. 해당 회사와 무관한 인물이 출처가 의심되는 자금으로 주식을 대량 매입했는데도 당국과 한국거래소는 내막을 파악하지 못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매입 공시 후 이씨의 계좌를 모니터링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나 자금 출처까지 알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5일 “수사 상황 및 회사 재무제표 수정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혹시라도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필요한 시기에 꼭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선제적으로 (해결책을)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오스템임플란트에 돈을 빌려줬거나 관련 펀드를 판매한 은행들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오스템임플란트에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대출해 준 일부 은행은 신용등급을 재평가한다는 계획이다. 은행의 재평가로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대출 한도나 금리가 조정될 수 있다. 하나은행은 오스템임플란트가 편입된 77개 펀드의 판매를 중단했다.
부실한 재무관리·사내통제 시스템이 드러난 오스템임플란트는 성난 투자자들을 달래는 데 급급하다. 오스템임플란트는 “횡령액 상당 부분을 조만간 회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회수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증시에서 퇴출될 상황에 처했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24일까지 오스템임플란트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올릴지 검토할 예정이다. 심사 대상으로 분류되면 한 달 안팎의 실질심사를 받는다. 이후 기업심사위원회와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