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베이비박스에 아기 두고 간 미혼모…‘유기 혐의’ 공방

입력 2022-01-04 18:40
2018년 5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에서 신생아 보육교사가 아이를 꺼내고 있다. 국민일보DB

지난해 한 달에 10명꼴로 새 생명이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곳에 온 아기들은 건강을 회복해 시설에 보내질 수 있었지만, 거리에 버려져 짧은 생을 마감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경기도 오산시 궐동의 한 의류수거함엔 탯줄도 채 떼지 못한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해 11월 강원도 한 바닷가 공중화장실에서도 탯줄이 달린 채 버려진 아기가 발견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베이비박스가 운영되지만, 이 곳에 아기를 두고 가는 행위 역시 엄연한 현행법 위반 행위기도 하다.

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검은 이례적으로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시설 관련 문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4월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유기한 혐의로 생모가 재판에 넘겨진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베이비박스가 영아 보호 시설인지, 유기 시설인지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한 데 따른 것이다.

해당 검사는 교회 측에 아기 안전이 확보될 수 있도록 베이비박스가 설계돼 있는지,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놓인 다음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놓고 가는 과정에서 아기가 다치거나 위험한 상황은 없는지 등을 상세히 문의했다고 한다.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두면 곧바로 알림이 울려 실내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이 곳에 온 아기들은 입양되거나 위탁시설에 보내진다. 지난해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영아는 113명으로 한 달 평균 9.4명에 이른다.

해당 영아 유기 사건은 지난해 4월 발생했다. 당시 베이비박스에는 생후 1주일 된 아기가 맡겨졌다. 교회 측은 아기를 ‘미아’ 신고했고, 사흘 뒤 관악구청에서는 시설로 보내기 전 의료기관에 보내 건강검진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이 아기를 알아봤다. 아기의 얼굴형과 콧잔등에 난 상처를 보자, 그 열흘 전쯤 해당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아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호자가 있던 아기가 며칠 만에 ‘유기 아동’이 됐다고 의심한 의료진은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산모 신상 정보를 파악해 피의자를 특정했다.

관악경찰서 조사 결과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온 건 20대 미혼모 A씨였다. 경찰은 지난해 9월 A씨를 영아 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으며, 상대 남성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성이 양육을 거부하며 낙태를 종용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이전에도 한 차례 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유기한 전력이 있다는 진술도 나왔다.

사건을 넘겨 받은 서울중앙지검은 A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재판에서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은 “베이비박스는 보호를 위탁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보호 없는 곳에 아이를 방치하는 유기와는 다르다”면서 “유기 행위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