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설악산 작은 거인, 사랑을 나르다

입력 2022-01-04 18:00
“힘들게 번 돈 나한테 쓰면 아깝더라.”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씨가 지난달 21일 설악산 흔들바위 옆으로 짐을 옮기고 있다. 그는 지게꾼 일과 막노동으로 번 생활비의 대부분을 불우이웃돕기에 쓰고 있다.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66)씨가 지난달 21일 설악산에서 지게를 진 채 울산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어유 저걸 어떻게 드셨데? 고생 많으십니다.”
지난달 21일 강원도 설악산 흔들바위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임기종(66)씨를 본 등산객이 눈이 휘둥그레져 말했다. 160㎝가 되지 않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그의 등에는 키만큼 높은 채소와 과일 상자가 탑처럼 쌓여있었다. 임씨는 설악산에 남은 마지막 지게꾼이다. 막노동을 하면서 한 달에 4~5번 60㎏이 넘는 짐들을 흔들바위 옆으로 옮긴다. 일을 시작할 때는 60여명의 동료들이 함께했다. 하지만 휴게소나 산장들이 없어지고, 일감도 줄면서 모두 떠나고 혼자 남겨졌다.


“산장, 휴게소가 많이 없어졌고 헬기로 짐을 나르는 경우도 많아져 일감이 많이 줄었다. 일이 없을 땐 끈 떨어진 가방처럼 느껴져 외롭고 슬프다.”

“지게를 질 때는 힘뿐만 아니라 요령, 끈기 3박자가 필요하다”

6남매 중 셋째인 임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16세 때부터 지게를 졌다. 초창기에는 어깨에 피멍도 들고 다리 근육이 뭉쳐 며칠 앓기도 했다.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던 임씨는 “내가 벌지 않으면 가족이 다 굶어 죽을 상황이었다”며 “당시엔 배를 타거나 짐을 지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오로지 이 일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3~4년 버텼더니 산악이 내 체질에 맞더라”고 말했다.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66)씨가 지난달 20일 강원도 속초의 자택에서 2012년에 받은 대통령 표창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만큼 일했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다 떨어진 신발들을 모아놨다. 지게꾼 그만두면 그때 버릴 것 같다.”

40㎏ 짐 기준으로 3만원을 받고 있다는 임씨는 빠듯한 생활에도 선행을 이어와 2012년에는 국민추천포상 대상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20년 넘게 보호시설에 있는 지적장애 1급 아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다가 주변 사람들이 함께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기부 활동을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는 ‘다사랑나눔봉사회’를 운영하며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효도 관광도 진행했다.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66)씨가 지난달 20일 강원도 속초의 자택에서 노인들을 위한 효도관광을 진행할 때 사용했던 버스 간판을 보여주고 있다.

임씨의 왼쪽 무릎에 수십 년 지게꾼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굳은 살이 박여 있다.

강인했던 임씨도 지게꾼 일이 점점 힘에 부치고 있다. 임씨는 “50대 때만 해도 120㎏ 냉장고가 거뜬했는데 이제는 숨이 차고 힘들어 죽겠더라”며 “지금은 이 정도(약 60㎏)의 짐이 적당하다. 70살까지는 힘 닿는데 까지 해볼 생각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젊은 시절에는 가족을 위해, 장년에는 이웃을 위해 산에 오르는 ‘설악산 작은 거인’은 오늘도 사랑을 나른다.


“다리는 다리대로, 짐은 짐대로 움직이면 넘어진다. 지게와 함께 흐름대로 걸어야 잘 간다.”


“기부활동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하고 있으니 날개 하나가 쳐진 느낌이다.”

이한결 기자 alwayss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