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 또 비극, 2만2000볼트에 사라진 예비신랑의 꿈

입력 2022-01-04 04:52 수정 2022-01-04 09:59

“일 끝나고 얼른 집에 갈게.”

한국전력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38)씨가 지난해 11월 5일 예비신부와의 통화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김씨는 ‘사랑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올해 봄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는 이날 홀로 전봇대 작업 도중 2만2000볼트 특고압 전류에 감전됐다.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던 김씨는 사고 19일 만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3일 MBC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경기도 여주의 한 신축 오피스텔 근처 전봇대에서 전기 연결작업 중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고무 절연장갑이 아닌 일반 면장갑을 착용한 채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타고 있던 차량은 고압 전기작업용 고소절연작업차가 아니라 일반 트럭이었다. 한전 안전규정상 이 작업은 2인1조로 진행됐어야 하지만 사고 당시 김씨는 홀로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김씨는 사고 직후 의식을 잃은 채 10m 상공에서 전봇대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인근 주민과 동료들이 119에 신고했지만 그를 땅으로 내리기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근방의 전기를 끊고 나서야 구조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닥터헬기를 타고 외상센터가 있는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이 더 걸렸다.

김씨는 맥박과 호흡이 살아 있는 채 병원에 후송됐다. 하지만 머리부터 상반신까지 전신의 40%가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고 장면을 목격한 인근 주민들은 큰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고, 안전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응급실에 뛰어간 가족들은 김씨의 얼굴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신장 투석을 하며 힘겹게 버티던 김씨는 패혈증 쇼크로 지난해 11월 24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MBC는 김씨가 38번째 생일 다음 날 사고를 당했고, 올봄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신랑으로 지난주 상견례를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김씨가 속한 하청업체 관계자들과 원청인 한전 관계자는 산업안전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됐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하청업체에는 안전수칙 위반 책임을, 원청인 한전에는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