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 바꾸면 수평적?”… 기업 인사·조직개편을 대하는 MZ의 시선

입력 2022-01-05 07:11

대기업들이 ‘젊은 조직’을 만드는 개편작업으로 분주하다. 세부적 차이는 있지만 ‘연공서열 탈피’ ‘직급 축소’ ‘성과 위주 평가’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인사제도를 추구한다는 방향성이 같다.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두고 “MZ세대에 맞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재계 관계자는 5일 “조직에서 수평적 문화를 중시하는 MZ세대가 많아지면서 기업 인사제도도 변화하는 추세다. 나이나 연차에 상관없이 실력에 따라 진급기회·보상을 제공하는 제도를 운용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인재를 조기 발탁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MZ세대 직원들 반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대기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꼽히는 안정성이 낮아진다는 점과 보수적인 사내 문화와 결합하면서 제도 취지대로 굴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가장 큰 불만은 성과 평가에서 출발한다. 성과 측정방식의 개선 없이 제도를 개편하면 경쟁만 과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직원 A씨(28)는 “회사가 도입하는 절대평가 제도에 대해 직원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오히려 평가자인 부서장 직권이 더 커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상위 10%를 제외한 90%의 직원을 대상으로 절대평가를 할 방침이다.

롯데 계열사 직원 B씨(32)도 “연구직이나 개발자 등 성과가 숫자로 드러나는 부서에선 성과 중심주의가 유리하겠지만, 경영지원 부서 등 객관적 측정이 어려운 곳도 많다. 결국 이런 부서의 직원들은 승진에서 밀려나거나 승진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직급을 축소하고 승진 연한을 줄이는 걸 두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CJ 계열사 직원 C씨(29)는 “능력만 되면 빨리 관리직급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겠지만, 모든 직원이 관리직급이 될 수 없다 보니 대다수에겐 오히려 승진 기회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삼성 계열사 직원 D씨(29)는 “승진 기회를 확대하는 건 상위 1%에게만 해당한다. 안정적으로 보장되던 승진 기회와 이에 따른 보상이 줄어들게 될 것이란 걱정이 많다”고 했다. B씨는 “여전히 안정성이 높은 직업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 한국 노동시장 분위기에서 충분한 소통 없이 실리콘밸리식 제도를 도입하면 불안감이 커지는 게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호칭을 바꾸는 걸 두고는 어떤 평가를 할까. 입사 후 계속 직급 호칭 대신 ‘님’을 사용했다는 C씨는 “특히 다른 부서나 계열사와 일할 때 동등하게 대우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윗사람을 대할 때도 더 편하게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CJ는 2000년에 국내 최초로 ‘님’ 호칭을 도입했었다.

다른 의견도 있다. 롯데 계열사 직원 E씨(36)는 “서로의 직급과 연공서열을 따지는 게 당연한 사내 분위기에서 직급이나 호칭을 바꾼다고 수평적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내부 조직문화를 바꾸는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만큼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충분한 소통에 바탕을 두고 신뢰를 쌓는 게 먼저라고 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확실성과 변화가 큰 시대인 만큼 유연하고 능력을 중심에 두는 인력 운용이 합리적 선택인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소수에게 더 유리한 제도이고 불안정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사체제의 변화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상과 제도적 보완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