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북부 시리아·이라크 국경지대에는 1500만명의 쿠르드족이 산다. 시리아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지에도 쿠르드인은 널리 퍼져있다.
4000만명의 쿠르드족은 ‘중동의 집시’로 불린다. 4000년전부터 이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해왔지만 1000년 전 이후 한번도 제대로 된 국가를 가진 적이 없었다. 유목·유랑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 대왕. ‘살라딘’으로 알려진 그는 12세기 십자군전쟁에서 기독교 십자군을 물리치고 쿠르드족 중심의 아랍 통합 왕조를 세운 사람이다. 터키와의 갈등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셀주크투르크 왕국과 끊임없이 갈등하는 살라딘과 그 후손들은 이후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됐고 잔인한 탄압에 시달렸다.
지난해 10월 터키의 쿠드르족 최대 도시인 디야르바키르에선 이색적인 미술전시회가 열렸다. 터키·쿠르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화해의 미래를 열겠다는 취지로 열린 전시회엔 다양한 쿠르드족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화랑 입구에는 터키군 총격에 사망한 쿠르드 민간인 사망자의 것이었지만 미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포탄에 부서진 관이 전시됐다. 쿠르드 반군에 의해 희생된 터키인의 흔적도 나란히 전시됐다.
디야르바키르 시청은 유서 깊은 관광도시였지만 터키군과 쿠르드반군의 대결장으로 변모한 이 도시를 살리기 위해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 메인 큐레이터는 쿠르드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인 아스메드 구네스테킨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터키정부와 구네스테킨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진행됐다. 전시회를 쿠르드 분리주의 옹호라고 여긴 현지 터키인들은 물리적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급기야 이 전시회를 “테러리스트 세력을 옹호하는 음모”라고 공격했다. 반면 쿠르드족은 이 전시회가 탄압 받는 자신들의 현실을 미화했다고 비난하며 전시장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전시회는 당초 1년 이상 지속할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중단됐다. 구네스테킨은 “정치가 아니라 내가 겪은 과거를 회상하는 예술적 방법일 뿐이었다”고 항변했지만 터키와 동족인 쿠르드인들조차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2022년에 접어들자마자 문을 닫은 이 전시회는 터키에서 ‘쿠르드’란 주제를 공식적으로 꺼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실히 보여준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천년 역사는 예술작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