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 전력이 있는 의붓딸의 방문 손잡이를 부쉈다가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모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을 상대로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9월 의붓딸이 방문을 열어주지 않자 펜치로 문손잡이를 부쉈다가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범행 동기나 이후 정황 등을 감안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A씨는 검찰에서 “의붓딸이 과거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며 “사건 당일 수차례 방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자해를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문을 부순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A씨가 방문을 부순 것은 의붓딸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오인해 벌인 행위라며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딸이 이미 몇 차례 자해를 시도했고, 술을 마시면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이 사건 당시 술을 마시고 들어와 청구인이 수차례 방문을 두드렸음에도 방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면 청구인으로서는 딸이 자해했거나 자해를 시도할지도 모른다고 오인할 만한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방문 손잡이를 훼손했다’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이 인정되더라도, 객관적인 행위만으로는 재물손괴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