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가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잇따라 관련 센터와 위원회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담과 교육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코인 거래소와 발행처에 투자자 보호를 강제할 규정이 없어 실질적인 ‘보호’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업법 제정 등을 통해 보호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주요 거래소들은 최근 경쟁하듯 투자자 보호책을 선보이고 있다. 업비트는 약 100억원을 들여 만든 투자자보호센터를 지난 28일 오픈했다. 업비트는 제휴를 맺은 전문 심리상담사와 법무법인이 코인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상담과 법률 자문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1일 센터 홈페이지에는 디지털 자산 관련 사기 유형 및 예방법과 교육 컨텐츠도 올라와 있다.
지난 10월 문을 연 빗썸의 고객지원센터도 온·오프라인에서 투자자 상담을 진행 중이다. 빗썸은 코인 거래 지원(상장) 관련 비위 행위 등을 모니터링하는 투자자보호위원회와 내부통제위원회도 신설했다. 빗썸은 투자자보호위에 각계 전문가를 위촉해 업계 최초의 외부 통제기구로 운영하겠다고 밝혔지만, 발표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인선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거래소가 내놓은 보호 대책에 의문을 제기한다. 큰 피해를 일으키는 불투명한 코인 상장과 폐지, 부족한 공시 정보, 시세조종 의심 행위 등을 개선하거나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코인 투자 커뮤니티에는 “누구를 보호해준다는 것이냐” “개미들 단물 빨아먹고 생색만 낸다”며 비판적인 반응이 많다.
거래소 측은 업권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제한적이라고 항변한다. 암호화폐가 본격적으로 거래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지난해에야 겨우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와 실명계좌 발급 등이 이뤄졌다. 분쟁이 잦은 코인 사기 및 상장·폐지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규율도 없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코인 발행처가 사기를 쳐서 문제가 발생하면 거래소는 거래 지원을 종료할 수밖에 없다. 발행처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본격 편입시킬 가상자산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11월 국회 정무위원회는 가상자산법안 공청회와 심사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규제 방향을 둘러싼 견해차만 드러나며 유보됐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국회 토론회를 열고 가상자산 거래를 감시하는 ‘디지털자산 관리감독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법 밖에 방치된 투자자를 보호할 대책이 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거래자 보호를 위한 규제의 기본 방향’ 보고서에서 “중요 투자 정보에 대한 의무공시 제도의 도입과 자본시장에 준하는 불공정거래 금지 규정의 정비, 청산·결제 기능의 독립성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제도화와 거래소의 자정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