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이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귀한 생명을 구한 유명한(37)씨는 그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뛰어들었던, 자신의 오지랖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022년 올 한해엔 또 어떤 이들의 오지랖이 세상을 따뜻하게 비춰주고 우리를 위로해줄까요? 세상을 바꾸는 착한 일, 우리 모두 할 수 있다는 유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인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유씨는 지난 5월 31일 밤 12시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인천 서구 가좌동 한 사거리에서 정지 신호를 무시한 채 교차로를 건너는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직진하던 차량은 느릿느릿 교차로를 통과했고, 중앙선을 넘나드는 등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유씨는 서둘러 차량을 따라갔습니다. 차량 뒤에 바짝 붙어 클랙슨을 울렸어요. 하지만 운전자는 반응하지 않았고, 차량도 좀처럼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씨는 다급한 마음에 자신의 차량을 도로 위에 세우고 뛰어가 맨몸으로 차를 붙잡았습니다. 다행히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유씨는 창문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운전석 문을 열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겼습니다.
그제야 차량이 멈췄고, 유씨는 비로소 운전자가 의식을 잃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119에 신고했고 운전자의 안전벨트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운전자의 체구가 크고, 주변에 사람도 없어 그를 차량 밖으로 안전히 옮기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 유씨는 보조석으로 자리를 옮겨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하기엔 너무나 비좁았지만, 유씨는 신경 쓸 새도 없이 심장 압박을 계속했습니다. 잠시 후 119 구급대가 도착했고, 병원으로 운전자를 옮겼습니다.
유씨는 3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음엔 운전자가 술에 취한 것으로 의심했는데 차를 멈춰 세운 뒤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며 “무슨 일인가 해서 목의 맥을 짚었는데 뛰지 않아 당황했다”고 했습니다. 이어 “이분을 살려야겠다.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곧바로 심폐소생을 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했지요. 부사관 출신인 유씨는 과거 현역 시절 구급법 교관으로 근무했던 경험이 운전자를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 중앙선 맞은편에서 차량이 달리고 있어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운전자를 돕기 위해 차 밖으로 나온 유씨도 2차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죠.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유씨가 맨몸으로 큰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차를 막아낸 것입니다.
유씨는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도 했지만, 차량이 중앙선을 넘은 상황이라 지체할 수 없었다”며 “서둘러 차량을 멈춰 사고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차량을 도로에 세운 뒤 뛰어나갔다”고 했습니다.
유씨는 당시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새신랑이었습니다. 그는 “운전자를 구급차에 태워 보내고 아내에게 곧바로 전화했다가 칭찬과 걱정 섞인 말을 들었다”며 “장인, 장모님께서도 칭찬을 해주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웃음을 지었습니다.
유씨는 해당 운전자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며 몇 차례 만났다고 합니다. 그는 “운전자분이 사고 3일 뒤 연락을 줬다. 그때는 벅찬 마음에 서로 울먹이느라 대화를 거의 못 했다”고 그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이어 “운전자분이 기력을 회복한 뒤 또 만났다”며 “그분이 저를 보자마자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을 다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셨고 우리는 울먹이며 대화를 나눴다”고 했습니다. 운전자는 해외에 체류 중이었는데 사고 당시 잠시 국내에 들어왔다가 운전대를 잡은 채 의식을 잃었고, 우연히 유씨를 만나 생명을 구했던 것입니다.
유씨는 자신의 선행을 ‘오지랖 넓은 행동’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습니다. 유씨는 “저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나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저 저는 창피해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오지랖, 용기가 더 있었던 것뿐”이라며 쑥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씨는 “지금도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분들이 많다. 선행은 특별한 날, 특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주저하지 않고 한발 먼저 다가가는 게 선행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그런 용기를 내면 참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유씨에게 표창을 수여하고 ‘우리동네 시민경찰’로 선정, 그의 용기와 선행을 기렸습니다. 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지난 달 22일 유씨에게 ‘2021 생명존중대상’을 수여했습니다.
유씨는 자신의 행동을 ‘오지랖’이라고 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돕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행 중인 차를 세운 그가 너무 대단합니다. 그의 용기가 한 생명을 구하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그런 용기를 갖고 있다는 유씨의 믿음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 모를 이들의 선행이 이어지고 있겠죠. 2022년에도 우리 이웃들의 착한 오지랖이 세상을 따뜻하게,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줄 겁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