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30일 한국 법원에서 자사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해 매각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제철은 징용 피해자 배상 소송의 피고 기업이다.
이날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제철은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원고 측 청구를 받아들여 한국 내 일본제철 자산 현금화를 위한 매각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지극히 유감”이라고 논평했다.매각명령에 즉시항고로 대항할지 여부에는 “결정문이 아직 송달되지 않아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일본제철은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는 “계속해서 양국 정부의 외교 교섭 상황에 근거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이른바 한국인 옛 징용공 문제는 일한(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일본제철의 입장은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일본 정부 입장을 그대로 관철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한국 대법원이 확정한 배상 판결을 이행할 뜻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포항지원의 일본제철 자산매각 명령이 나온 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외교 경로로 한국 정부에 항의하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외무성은 한국 법원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앞서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의 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018년 10월 1억원씩의 위자료 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판결이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문구가 포함된 한일청구권협정에 위배된다다며 한국 정부가 협정에 부합하는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일본제철이 전향적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서 원고 측은 배상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제철과 포스코의 비상장 한국 내 합작법인인 PNR 주식을 팔아 현금화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 왔다. 그러던 중 포항지원이 이번에 원고 측 청구를 받아들여 PNR 주식 약 19만4000주(액면가 약 9억7000만원)의 매각 명령을 내렸다.
일제의 강제노역 관련 피해 배상 소송을 둘러싸고 피고인 일본 기업의 자산매각 명령이 나온 것은 지난 9월 대전지법이 결정한 미쓰비시중공업 사례에 이어 일본제철이 2번째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매각명령에 불복하는 즉시항고장을 냈다. 일본제철도 같은 수순을 따를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매각을 통해 현금화되는 등 실질적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보복조치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실제로 매각명령이 집행돼 현금화로 이어지면 한일 관계는 전보다 더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제철은 매각명령에 대해 두 차례 항고로 대항할 수 있다. 재항고까지 기각되면 매각명령이 확정되고 자산 현금화를 위한 경매 등의 절차에 접어든다. 피고 측이 항고와 재항고 절차를 모두 진행할 경우 매각명령 확정까지는 최소 6~8개월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징용 소송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 이어 내년 5월 새 정부에도 계속해서 한일 간 외교적 해결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