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으로 대만인 유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50대 남성에게 내려진 징역형이 30일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2회 이상 음주운전 적발 시 가중 처벌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윤창호법’ 일부 조항이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효력을 잃으면서다. 헌재의 결정 이후 대법원이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52)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위헌 결정으로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 조항이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한 경우, 해당 법률 조항을 적용해 기소한 피고인 사건은 범죄로 되지 않는 때에 해당한다”며 “도로교통법 위반 부분에 대해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대만인 유학생 쩡이린(28)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제한 속도가 시속 50km인 도로에서 시속 80km로 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9%로 만취 상태였다. 이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2주 만에 23만명의 동의할 정도로 큰 공분을 샀다.
검찰은 1심에서 A씨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량보다 높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김씨가 2012년과 2017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상습 음주운전자라는 점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헌재가 구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 재범에 대해 징역 2~5년이나 1000~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조항은 과잉금지원칙 등에 어긋난다며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이 효력을 잃으면서 김씨는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쩡씨의 친구들은 판결 이후 입장문을 내고 “대만은 최근 음주운전 단절을 위해 더 강력한 처벌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은 역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쩡씨의 부모가) 너무 지치고 절망스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