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차를 몰다가 대만인 유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에게 내려진 징역 8년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위헌 결정한 ‘윤창호법’(구 도로교통법 148조의2 제1항)이 하급심 선고에 적용됐으니 다시 하급심 재판을 해야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52)씨에 대해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위헌 결정으로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 조항이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한 경우 해당 조항을 적용해 기소한 사건은 범죄로 되지 않는 때에 해당한다”며 “공소사실 중 도로교통법 위반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구 도로교통법 중 2회 이상 음주운전자를 가중처벌하게 한 이른바 ‘윤창호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에서 “과거 음주운전 적발 사실이 있다고 해서 아무런 기간 제한 없이 반복 음주운전을 무조건 가중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봤다. 또 과거 범죄의 혈중알코올농도 수준 등에 대한 고려가 없이 가중처벌하는 것도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앞서 김씨에 대해 1심과 2심은 특가법 및 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묶어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윤창호법 조항이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났기 때문에 2심 재판을 다시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 파기에 따라 다시 열릴 2심에서는 김씨에 대해 특가법 및 음주운전 관련 일반 처벌 조항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사건을 심리한 후 양형을 다시 산정하게 된다.
피해자 부모 측 “지치고 절망” 입장 전해
피고인 김씨는 지난해 11월 6일 오후 11시 40분쯤 서울 강남구 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초과해 차를 몰다 보행자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대만인 유학생 쩡이린(曾以琳·28)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김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79%의 만취 상태였다. 제한속도 시속 50㎞ 구간에서 시속 80.4㎞로 차를 몰았고 정지 신호도 무시했다.
검찰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구형했는데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더 높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번 사건은 숨진 쩡씨의 유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대만 언론에서도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쩡씨의 어머니는 국내 법원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살인자의 잔인함 때문에 모든 목표를 잃어버렸다”며 “유일한 부탁이 있다면 이 비참한 사건에 대해 살인자에게 가장 엄중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호소했었다.
사건 공론화를 위해 노력해온 쩡씨의 친구들은 이날 대법원 판결 뒤 “대만은 최근 음주운전 단절을 위해 더 강력한 처벌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은 역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쩡씨의 부모가) 너무 지치고 절망스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