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야당·언론 사찰 논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공수처는 독립된 수사기관이고, 공수처의 통신 조회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 게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공수처가 적법한 수사 활동을 벌이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정부의 검찰 개혁을 상징하는 기구인 공수처가 흔들리면 임기 말 국정 운영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청와대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며 암묵적으로 공수처에 힘을 싣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0일 “공수처는 독립기구다. 청와대가 (공수처 논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청와대가 공수처의 활동에 개입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공수처의 통신 조회에 대해 언급할 경우 대선을 앞두고 정치중립 위반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 야당과 공수처의 갈등이 청와대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크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청와대가 ‘로키’ 대응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일각에선 공수처가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공수처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비공개로 진행하는 사찰이 아닌, 수사에 쓸 목적으로 투명하게 일부 야당 의원과 기자들의 통신 자료를 살펴봤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두 차례 수사·정보기관의 통신 조회 기록을 발표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경찰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은 법에 따라 매년 수만~수백만건의 통신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올 상반기 통신 조회 기록이 135건에 그치는 공수처만 문제 삼는 것은 정치 공세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공수처의 통신 조회가 사찰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그동안 사찰과 선을 그어온 문 대통령도 당혹스러운 상황이 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공수처가 자사 서울지국 소속 한국인 기자의 통신 자료도 조회했다며 조회 이유와 경위를 밝힐 것을 공수처에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민간인 사찰 금지를 명목으로 국정원의 국내정보담당관(IO) 직을 폐지했다. 그러나 2018년 김태우 특별감찰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태도 터졌다. 당시 청와대는 “문재인정부의 유전자(DNA)에는 사찰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