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북 전주의 ‘얼굴없는 천사’가 세밑 찬바람을 헤치고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코로나19 한파속에서도 22년째 이어진 남몰래 선행이다.
29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5분쯤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성산교회 오르막길 주차된 트럭에 상자가 있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직원들이 나가보니 남성이 가리킨 곳에 A4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5만원권 1400장과 동전 등 모두 7009만 4960원이 들어 있었다.
또 타이핑한 글씨체로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시고 따뜻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은 종이가 들어 있었다.
이 천사가 기부한 성금은 모두 23차례(2002년엔 두차례 기부), 8억 872만원 8110원으로 늘어났다. 성금은 사랑의 공동모금회를 통해 코로나19로 더욱 힘든 지역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얼굴없는 천사’는 2000년 4월을 시작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말에 전주 노송동주민센터 옆에 수천만원이 담긴 상자를 몰래 놓고 사라진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전국에 익명 기부 바이러스를 전파시켰다. 해마다 주민센터 옆 화단에 주로 놓고 갔으나 올해는 주차된 트럭 위였다.
전주시는 지난해까지 이 천사가 보내온 기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6158가구에 쌀과 현금, 연탄 등을 선물했다. 노송동에 거주하는 저소득가정 초·중·고교 자녀 20명에게 매년 장학금도 주고 있다.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천사의 뜻을 널리 기리고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하고 불우이웃을 돕는 다채로운 나눔과 봉사를 펼쳐오고 있다.
전주시는 그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표지석과 천사기념관도 세웠다. 표지석에는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2019년에는 성금 상자가 도난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 인근 가게 주인이 수상한 차량의 번호를 적어 놓은 덕분에 5시간만에 절도범을 붙잡았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는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의 선행으로 인해 따뜻한 ‘천사의 도시’로 불려왔으며 익명으로 후원하는 시민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얼굴 없는 천사와 시민들이 베푼 온정과 후원의 손길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