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따라 유학 떠난 사랑꾼, 오페라계 ‘라이징 스타’ 되다

입력 2021-12-29 06:00 수정 2021-12-29 17:35
테너 박승주가 마포아트센터의 송년음악회를 이틀 앞둔 28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연말을 맞아 여러 공연장이 송년 음악회를 앞다퉈 올렸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 취소됐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마포문화재단 마포아트센터도 30일 송년음악회를 준비했다. 마포아트센터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16개월간의 리모델링 공사 이후 첫 기획공연이자 내년 3월 정식 재개관을 앞두고 시범공연을 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약 197억 원이 투입된 마포아트센터의 리모델링은 주로 아트홀맥에 집중됐다. 객석이 733석에서 1004석으로 늘어나고 무대 공간과 오케스트라 피트가 확장되는 등 시설 확장 및 개선이 이뤄졌다. 특별한 의미를 지난 마포아트센터 송년음악회에는 이승원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과 함께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바리톤 김기훈, 테너 박승주, 소프라노 손지수가 나선다.

올해 출연진 가운데 테너 박승주(31·예명 Mario Bahg)는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 노르웨이 퀸소냐 국제 콩쿠르, 이탈리아 알카모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파로 해외 오페라계에서 떠오르는 신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의 2019/20 시즌 ‘린데만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발탁된 그는 2019년 마스네 ‘마농’의 경비원 역으로 MET에 데뷔했다. 또 같은 해 캐나다 몬트리올 오페라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아르투로 역으로 데뷔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독일 쾰른 오페라에서 ‘파우스트’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한국에서 그동안 여러 차례 제안을 받았지만 스케줄이 안 맞아서 공연 기회가 적었는데요. 이런 콘서트 무대라도 꾸준히 한국 관객과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부산 출신인 박승주는 부산 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독일 만하임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만하임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수료 중이다.

“부산시립합창단 트레이너였던 아버지와 고등학교 음악교사였던 어머니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감이 좋았어요. 다만 부모님은 제게 성악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는데요. 중2 때까지 놀기만 하던 제가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자 아버지가 직접 성악을 가르쳤습니다.”

한예종을 졸업했지만 그가 성악가로서 재능을 꽃피운 것은 여자친구를 따라 독일로 유학간 이후부터다. 여자친구는 올 여름 그와 결혼해 아내가 된 소프라노 고승희. 아내는 올해부터 독일 만하임 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가 2014년 만하임 음대로 유학을 갔어요. 솔직히 저는 유학을 생각한 적 없었지만 아내를 따라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2015년 여름 졸업한 뒤 독일로 갔고, 이듬해 아내가 다니는 만하임 음대에 입학했는데요. 저희 부모님조차도 제가 독일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거라고는 생각 안하셨습니다. 하지만 입학 첫해 스웨덴 빌헬름 스텐함마르 국제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주목 받았습니다. 첫 단추가 잘 꿰어진 덕분인지 이후에도 여러 콩쿠르에서 수상하는 등 일이 잘 풀렸습니다. 아내는 제게 늘 자기 덕분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에요. 혼인 신고서는 제출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식을 못 올렸는데요.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꼭 식을 올리고 싶습니다.”

테너 박승주는 2019/20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데 이어 2020년 4월 독일 쾰른 오페라에서 ‘파우스트’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이한결 기자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그는 아내와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독일 베를린 방송 합창단 입단을 고민했다. 그런데, 2018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한 지 얼마 안됐을 때 MET의 캐스팅 담당자로부터 ‘린더만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제안받았다. MET의 린더만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재능있는 신인 성악가들을 발탁해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미래 스타의 산실로 유명하다.

“MET의 제안을 받고 고민도 됐지만 만하임 음대의 지도교수님과 상의 끝에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MET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제게 최고의 선택이 됐어요. 오페라 가수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기회를 가져다 줬거든요.”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그는 미성의 소유자다. 밝고 서정적인 노래를 잘 소화하는 리릭 레제로여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코지판투테’나 베르디의 ‘리골레토’ 같은 오페라에서 빛을 발한다. 다만 국내에선 아직 전막 오페라에 출연한 적이 없다. 대신 지난 2018년 콘서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돈 오타비오 역에 이어 같은 해 서울시합창단의 ‘글로리아 미사’에 출연했으며 지난해부터 2년 연속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솔리스트로 등장해 호평 받았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전막 오페라로도 한국 관객을 찾아 뵙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도 5월 포르투갈 리스본 산 카를로스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파우스트’의 타이를롤을 맡는가 하면 6월 지휘자 카리나 카넬라키스가 이끄는 네덜란드 방송 교향악단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의 솔리스트로 출연하는 등 해외 스케줄이 빼곡하다. 비록 전막 오페라가 아닌 콘서트지만 한국 무대에도 선다. 4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하이든의 ‘불안한 시대를 위한 미사’(일명 ‘넬슨 미사’)와 12월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각각 솔리스트로 출연한다.

그런데, 그가 클래식 애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대중적 인기는 다른 문제다. 지난 몇 년간 남성 사중창단을 뽑는 JTBC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 시리즈를 통해 남성 성악가들이 스타로 떠오르는 것에 부러움은 없을까.

“미라클라스의 정필립과 레떼아모르의 김민석은 예전부터 알던 친구이고 라비던스의 존노와는 뉴욕 한인교회에서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한 적 있습니다. 음대 성악과를 졸업해도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팬텀싱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인기를 얻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고생했던 만큼 제대로 보상받았으면 좋겠어요. 다만 저 자신은 방송 출연하기엔 쇼맨십이 없어요. 제겐 무대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쇼맨십이 없다고 겸손해했지만 유쾌한 언변으로 인터뷰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다. 머지 않은 시기에 대중도 그의 넘치는 매력을 알게 될 것 같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