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홍합 한 그릇의 빚, 이제 갚습니다” [아살세]

입력 2021-12-28 20:35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는 A씨가 2000불과 함께 전달한 편지. 신촌지구대 제공

“50년간 항상 친절하셨던 아주머니에게 거짓말쟁이로 살아왔습니다”

지난달 12일, 72세의 백발노인은 죄책감이 담긴 친구의 편지와 함께 2000달러 수표를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에 전달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는 A씨가 2000불과 함께 전달한 편지. 신촌지구대 제공

편지의 주인공은 현재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며 직장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A씨. 그는 1970년대 중반 강원도 농촌에서 서울로 올라와 신촌에서 고학생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밤, A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귀가하던 중 신촌시장 뒷골목 리어카에서 홍합을 파는 아주머니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는 아주머니들에게 “홍합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을까요? 돈은 내일 갖다 드리겠다”고 용기 내 부탁했습니다.

그중 한 분이 선뜻 손수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홍합 한 그릇을 내주셨습니다. A씨는 고마운 마음을 품은 채 홍합 한 그릇을 맛있게 먹긴 했지만, 다음 날에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죠. 결국 그는 돈을 갖다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후 A씨는 군대에 입대했고 군 복무를 마친 후 미국 이민 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난 50년간 항상 “그 친절하셨던 아주머니에게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는 죄책감과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삶을 돌아보며 너무 늦었지만 어떻게든 그 아주머니의 선행에 보답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한 A씨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신촌지구대 기부금 전달식. 연합뉴스

A씨는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제공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며 “그 아주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홍합 한 그릇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보내게 됐다”고 편지봉투에 2000달러 수표를 동봉했습니다.

그는 한국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보냈고, 친구는 지난달 중순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를 찾아 “미국에서 생활하는 친구의 부탁”이라며 이를 전달하고 말없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애초 A씨는 자신의 돈을 조용히 처리해 주기를 원했으나, 황영식 지구대장은 선행에 감동해 익명으로나마 이 같은 사연을 알릴 수 있도록 설득했고, 이날 오전 10시 30분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회에 기부했습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선행이 선행을 낳았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사연, 감동적이다” “마음의 빚을 더 큰 사랑으로 베풀었다” 등 감동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홍합 한 그릇의 빚을 평생 잊지 못하다 뒤늦게 갚은 A씨의 사연이 큰 울림을 줍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선행의 울림이 우리 사회 곳곳의 이웃들에게 닿길 바라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원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