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5·18 광주진압 건의에 “굿 아이디어”

입력 2021-12-27 16:35
5·18 민주화운동 당시 투입된 차륜형 장갑차와 계엄군의 모습. 국가정보원 제공

1980년 5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른바 ‘충정작전’이라 불린 광주진압작전에 대해 “Good Idea(굿 아이디어)”라고 발언했다는 점이 기록된 자료가 공개됐다. 광주진압작전을 실질적으로 승인한 것이 전두환이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7일 출범 2주년 기념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이런 내용이 포함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1980년 5월 23일 진종채 2군사령관이 충정작전(광주재진입작전)을 건의한 문서에 ‘閣下(각하)께서 Good Idea라고 발언’한 사실이 기재됐다. 이 내용은 2군사령부 작성 문건인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에 담겼다.

해당 작전을 위해 계엄군 측에서는 47개 대대, 2만 317명의 병력을 투입했고,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했다.

12·12 사태 이후 장성들, 전두환에 ‘각하’ 호칭

여기서 ‘각하’는 전두환이라는 것이 위원회의 판단이다. 위원회는 “이때 각하는 (1980년 5월 21일 다른 기록에) ‘전 각하’로 된 걸로 봐서 최규하(당시 대통령)가 아니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라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 특전사령관 등이 참석한 회의서류에 ‘전 각하 : 초병에 대해 난동시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강조’라고 기록돼 있다.

외신기자 노먼 소프가 촬영한 1980년 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과 전남도경찰국 모습. 노먼 소프 제공

송선태 위원장도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보다 군의 선배들이 후배 장군에게 ‘각하’라 부를 수 있느냐는 상식적 의문이 있었는데 당시 대부분 장성들이 12·12 이후 모두 전두환을 각하라고 불렀다는 진술이 있다”고 전했다.

위원회는 또 1980년 5월 21일 ‘진돗개 하나’ 발령조치가 공수부대에도 하달된 사실도 새롭게 찾아낸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면 실탄분배와 발포가 허용되는데 3, 7, 11공수여단과 20사단 등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어떠한 자료에도 발령 사실은 기록돼 있지 않았다.

계엄군 저격수, 민간인 사살…시신 숨겨

계엄군의 비무장 민간인 살상 내용도 구체적으로 추가로 확인됐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께 도청 앞 집단 발포 당시 전일빌딩 옥상에 저격수로 배치되었던 제11공수 여단 한모 일병은 자신이 장갑차 위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던 청년을 조준하여 저격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피해자는 민간인 조모씨로 확인됐다.

이어 5월 27일 회사에서 숙직하고 밖을 내다보던 민간인 오모씨를 20사단 소속 조모 병사가 저격해 사살하고, 건물 밖으로 떨어진 시체를 공용터미널로 옮겼다는 복수의 계엄군 진술도 위원회는 확보했다. 그동안 피해자 조모씨는 유탄에 피격·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발포명령 체계의 실체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자위권 발동과 광주진압작전 관여 사실을 밝혀가고 있다”면서 “광주진압작전의 최종·실질적 승인권자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라는 대다수 국민의 추정적 의혹 수준을 넘어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 증거에 이를 수 있도록 내년 5월까지 역사적 진실에 준하는 추가 조사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