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발칙한 신화적 상상의 연극 <위대한 뼈>

입력 2021-12-27 08:45

“우리는 ‘물고기’로 퇴화하고 있다.”

<위대한 뼈>(박진희 작)는 물고기로 퇴화한 ‘인간의 뼈’라는 발칙한 신화적 상상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물고기로부터 진화(進化)해 그 몸이 물고기로 퇴행해 간다는 작가적 발상은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갈라파고스>를 떠올리게 하고, 다윈의 <종의 기원>이 연상 된다. ‘갈라파고스제도’는 찰스 다윈 진화론 연구로 유명한 남미 에콰도르 섬 들이다. 비글호에 몸을 싣고 남미를 돌던(1835) 다윈은 갈라파고스제도 미지의 섬에 도착한다. 거북이, 멧새(핀치새)에서 변종된 종(種)을 발견한다. 다윈은 진화론을 발전시키고 보네거트는 다윈의 진화론을 토대로 소설을 써내려 갔다.

갈라파고스제도 가상의 무인도 싼타 로자리아를 돌아볼 수 있다. 작가는 전쟁과 폭력, 악과 파멸로 괴물이 되어가는 종말적 세상의 근원을 인간의 큰 두뇌(Big brain)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악의 근원이 되는 인간의 두뇌는 무인도 갈라파고스제도 싼타 로자리아 섬에서 백 만년에 걸쳐 살아가며 인간은 물고기로 퇴화해 간다는 것이다. 경기도극단이 올해 상반기 첫 장막희곡 공모를 통해 선정한 희곡 <위대한 뼈>도 대한민국 50대 가장 병태가 물고기로 퇴화해 가는 이야기다.


연극<위대한 뼈> 우리는 물고기로 퇴화하고 있다.

거대한 수족관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것처럼, 주인공 병태는 물고기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물고기 화석이 발견된 ‘그란데 위소’(Grande hueso) 라는 허구의 섬으로 인간의 유전적 종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메일 한통을 남기도 에콰도르로 떠난다. 병태가 살아가는 현실은 거대 수족관에 갇혀 살아가는 삶이다. 사회적 죽음이 일어나고, 지옥 같은 입시 현실은 자살로 내몰리는 절망과 불안의 사회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거대한 수족관에 갇혀 물고기 아가미로 숨을 쉬며 “우린 모두 수족관에 사는 물고기.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죽음 힘을 다해 떠 있는” 비극적인 사회 현상이다.

간결한 텍스트는 정밀한 한 태숙 표(標) 상상력으로 공간은 역동적으로 채색된다. 텍스트의 언어를 강렬하게 밀어 넣고 연출의 승부수를 띄우는 노련함도 건재하다. 공간으로 전이시켜 발화(發火)되는 이미지는 연극 언어로 축약되고 극적 파동의 과녁을 향해 분해시키는 타격성도 여전하다. 무대는 마치 해수면(海水面)을 바라보게 된다. 수족관을 대형 LED스크린으로 무대 후면 그려내고 있는데, 인간과 사회는 수족관에 갇혀 살아가는 이미지로 투사된다.(정신과 심리 상담실, 도서관 토론 세미나실, 물류창고 현장, 유전학 연구실, 다큐멘터리, 송PD의 취재 현장과 불법임상실험제보자, 경찰서와 에콰도르 이민국, 물류창고, 스무 살 노동자의 지게차 추락사고 회상, 진 교수 임상 실험실) 등의 장면 배열은 한태숙스러움으로 재배치되면서 극적인 장면으로 충돌해 리듬의 파동을 형성한다.


1장은 정신과 심리 상담을 받는 병태(김길찬 분)가 아가미로 헤엄쳐 살아가는 물고기로 퇴화해 간다는 망상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물고기로 변해가는 심리적 균열은 소설 <갈라파고스>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뇌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 세상(전쟁, 폭력, 경제위기, 사회적 참사, 불평등)으로부터 불안감과 인간의 심리적 균열은 악화된다. 국민 4명중 1명은 스트레스, 우울, 자살, 중독, 불안 등의 정신 질환을 겪고 있고 대한민국 사회는 수족관 속 인간으로 자유로워 질 수 없는 삶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50대 가장 병태의 정신적 균열은 비정규직 알바생 죽음으로부터 기인한다. 병태 내면의 균열은 물고기의 비늘로 전이되는 망상으로 악화된다. 소설 <갈라파고스>처럼 인간이 물고기로 퇴화되는 현상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환경과 절망적 현상에서 비롯된다. 병태 몸에 아가미가 생겨나고 온몸이 비늘로 덮이는 상상을 하게 되는 시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병태와 물류창고 공장에 입사한 비정규직 스무 살 노동자의 지게차 추락과 사망 사고 현장을 목격하면서부터 몸이 자유로운 물고기로 퇴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고 현장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병태의 무의식은 20대 지게차 노동자와 회상 장면으로 배치하면서 죽음의 통증이 끝나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의 사회적 참사들(세월호, 대구지하철참사, 남이천 물류창고 산재 사망 사고, 쿠팡 물류 센터 집단 감염 사태, 피디 사망 사건, 故)김태규 청년 일용직 건설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부터 비롯된 망자(亡者)들을 떠올리게 한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세상이고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괴기한 괴물의 기계음으로 작동되는 인간으로 형상화 된다. 마치 한국 사회에서 쓰러져간 사회적 죽음들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넓은 바다로 더 이상 전진하고 나아갈 수 없는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타인의 지느러미를 삼키고 뜯으면서 견디면서도 죽음을 기다리는 세계다.


작가는 자신의 몸이 물고기로 변해가는 병태의 불안감을 정신 균열로 바라보지 않고 물고기로 퇴화해 간다는 상상의 신화적 발상을 차용해 연극적 장치로 연결한다. 3억 7500만 년 전, 물고기에서 네 발달 달린 물 짐승으로 진화한 것을 증명해주는 물고기 화석이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다큐멘터리 영상을 틀고 유전자 변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진 교수(한범희 분)를 등장시켜 전설의 부족 그란데 위소 원주민들이 물고기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해온 돌연변이 유전자 이론을 소개하며 신체 조직이 퇴화 되었다는 유전학적 가설을 제시한다. 진 교수는 물고기로 퇴화하는 돌연변이 유전자 변형을 막을 수 있는 균을 배양하기 위해 임상실험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불법과 비리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유투브 채널 송PD는 진 교수의 불법 임상실험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러내고 있다. 인간이 물고기로 퇴화 한다는 연극 <위대한 뼈>는 소설<갈라파고스>의 장면들을 연상 시키면서도 대한민국 사회 산업 재해와 사회적 참사, 비정규직과 노동 문제, 입시, 의문사, 청년 자살, 황우석 사태 등 한국 사회 참사의 시간으로 되돌린다. 그 한가운데 살아가는 병태는 거대한 대한민국 수족관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로 퇴화되고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한태숙 연출은 바이러스 공포로 인한 죽음과 한 인간의 퇴화를 거세(去勢)하고 시선을 한국 사회의 현상과 현실 문제로 무대를 파고든다.

작가의 발상을 한태숙의 역동성으로

<위대한 뼈>의 텍스트는 평면이고 작가의 언어를 무대로 구현하는 한태숙 미학은 입체적이다. 작가의 텍스트를 한태숙의 연출적 설계도로 그려 넣고 무대로 구현해 내는 폭발적인 힘은 극 중 장면에서 윤기가 흐르고 그 파동은 현실 사회로 전이된다. 긴장감이 유지되는 장면의 경계는 송PD를 중심으로 극적인 이완성을 들어내며 무대를 환기시키는 여유도 있다. 에콰도르 그란데 위소 섬 세계 동식물 보호(보존)구역에서 수영을 하다 중국 선원들과 이민국 경찰한테 심문을 받는 장면에서는 대서양와 인도양을 건너 남미 앞바다와 한국 영해까지 불법 조업으로 세계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 조업 논란을 연상하게 한다.

연출이 텍스트를 연극 언어로 무대를 증폭시키는 장면이 네 번 그려지는데 그 첫 번째가 희곡에서는 표현되지 않는 심리상담사 소리를 기계적 음성으로 처리하는 장면이다.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의사는 기계음으로 작동되는 인간으로 형상화된다. 괴물처럼 들리는 기계음소리로 처리해 여전히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권력과 사회, 지식인을 겨냥한 사회적 시선으로 다가온다. 두 번째는 병태가 거대한 해수면(수족관)을 마치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무대 전체가 그로테스크한 전경화를 이루는 장면인데, 이 장면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연결해 물고기로 퇴화하는 병태의 현상을 사회적 문제로 바라본다. 후면을 거대 수족관처럼 둘러싸고 있는 무대 구조에서 한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이 마치 바다를 헤엄치는 광활한 이미지는 인간의 연민을 품어내는 언어가 된다.


세 번째는 물류창고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내는 장면으로 공장에서 반복적으로 나사를 돌리고 조여대는 찰리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그려내면서도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현상을 은유하고 병태 몸은 아가미와 지느러미가 터져 나와 물고기로 퇴화해가는 분열과 불안 증세에 시달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태숙 연출은 노장다운 승부수를 띄운다.

“세상이 수족관이잖아요. 전 거기 갇혀 있는 물고기고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여기서 나갈 수 없어요”

병태의 마지막 대사가 들리고 수족관을 뚫고 나오려는 인간의 물고기를 배우들의 탁월한 움직임과 입체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이 장면에서 죽음에서 꺼낼 수 없는 사회적 죽음과 과열된 입시, 노동 문제 그리고 여전히 진실은 수족관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되며 수족관 해수면 밑바닥으로 인간은 죽어가는 물고기가 되어간다. 다소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텍스트를 한태숙 연출은 연극적인 살점과 장면의 구조를 만들고 이미지로 전경화를 시켜내며 시각적인 역동성을 드러냈고 사회를 타격하는 메시지의 파열음은 강했다. 신약을 개발하려는 장면에서 황우석 박사가 떠오르고, 세상의 불법과 비리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전직 PD 출신 유투버 송PD를 통해 진실은 ‘좋아요’, ‘구독 버튼’을 외치며 자본으로 흡수되는 소리로 모아진다. 경기도극단< 위대한 뼈>의 몰입도 2할은 작가의 발상이, 8할은 한태숙 연출의 역동적인 파워가 더해졌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