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투쟁의 삶을 살았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26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투투 대주교의 일생은 반(反) 아파르트헤이트로 대변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는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세계교회와 함께 펼쳐나갔다. 이를 위해 그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줄곧 협력했으며 WCC도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투쟁과 WCC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 관계다.
WCC는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했던 도덕적 투쟁의 핵심 지도자였다”며 “그의 일생의 사역은 남아공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됐다”고 기억했다. 이어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에도 정의를 위한 그의 원칙적인 헌신과 참여의 삶은 흔들리지 않았다”며 “그의 신앙은 만인을 포용했고 기독교의 책임이야말로 만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열정적으로 믿고 실천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한 “그는 우리 모두가 그 믿음 안에 설 것을 촉구했고 신앙을 따라 믿은 대로 살 것으로 지속해서 권면했다”고 전했다.
1997년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뒤 투병했지만, 평화를 위한 사역은 중단하지 않았다. 세계교회 지도자들도 일제히 추모에 나섰다.
WCC 총무 대행 요한 사우카 박사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충실한 공헌자였으며 우리에게 끈기의 가치를 가르쳐 준 투투 대주교를 추모한다”며 “90년 동안 우리에게 투투 대주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삶과 수많은 업적을 통해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줬으며 하나님이 각자에게 준 재능을 통해 이웃을 섬기라는 교훈을 줬다”며 “교회가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삶으로 보여줬다”고 전했다.
WCC 국제문제위원회의 의장 프랭크 치카네 목사는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른 부당한 행위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함해 전 세계를 누비며 다른 사람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며 “그는 불의에 대항했지만, 용서의 예언자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용서 없이 미래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적인 사회에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 ‘만약 가슴에 증오를 품고 산다면 자신뿐 아니라 여러분의 공동체도 비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라며 용서를 앞세웠다”고 회상했다.
투투 대주교는 1931년 10월 7일 요하네스버그 서쪽 작은 마을 클레르크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그는 흑인 아이들에게만 가혹했던 교육 환경에 분노해 성직자가 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0세에 성공회 사제가 됐고 1986년 대주교에 임명됐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고 넬슨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을 때 그는 남아공에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을 붙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 민주화와 흑인 자유 투쟁 운동의 양대 지도자로 여겨진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구호 아래 진실과화해위원회를 구성해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인종 간 화해를 일궜다고 평가받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