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사업부를 빼서 별도 법인으로 만든 후 증시에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 국내 상장사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기존 법인이 상장된 상태에서 자회사가 추가로 상장되기에 모회사 소액주주들은 손해를 피할 수 없다. 쪼개기 상장은 외국에서도 흔치 않고 대주주에 유리해 개인 투자자를 보호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물적 분할과 상장을 진행 중인 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사업 부문을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을 한 달여 앞두고 52주 신저가(62만1000원)를 기록했다. 배터리 사업의 비전을 보고 LG화학에 투자한 자금이 자회사 상장을 앞두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콘텐츠 기업인 CJ ENM은 지난달 콘텐츠 제작 부문을 물적 분할해 자회사로 만들겠다는 공시 후 주가가 21.9% 떨어졌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금을 모으고 성장에 집중하기 위해 분할 상장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물적 분할 시 기존 법인은 신설 법인의 지분을 모두 취득한다. 이후 기업공개(IPO)로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 해당 기업은 막대한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분사 후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해외 기업들은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 간 이해 상충으로 인한 소송 리스크 등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유튜브를 상장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회사가 모회사와 동시 상장되는 사례는 미국에서는 거의 없고 영국은 5%, 일본은 7% 정도 된다”며 “(양사 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쪼개기 상장이 빈번한 이유는 오너 일가 같은 대주주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회사의 주주는 신설 법인 주식을 하나도 받을 수 없다. 신설 법인의 주식을 기존 주주와 나눠야 하는 인적 분할에 비해 대주주의 지배권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반면 주가 하락 같은 희생은 기존 주주들이 짊어져야 한다. 모회사 시가총액에는 자회사의 가치가 이미 반영돼있다. 자회사가 독립적으로 상장되면 모회사의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가 누리는 이익은 거의 없다. 이를 보상하기 위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물적 분할을 추진하는 일부 기업은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겠다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포스코는 기존 법인을 지주사로 전환하고 핵심인 철강 사업을 물적 분할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포스코 측은 “향후 신규로 설립되는 법인들도 상장은 지양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분할 상장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진 일부 주주는 온라인 카페까지 개설해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후보들에게 기업들의 마구잡이 물적 분할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금융당국은 쪼개기 상장을 두고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