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기승(67)씨는 지난 10월 제네시스 G80을 구매했다. 기존에 타던 그랜저는 중고차 온라인 거래 사이트를 통해 처분했다. 지금까지는 신차를 구매할 때 기존 차량 처분을 따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강행하기로 하면서 대리점에서 신차 구매와 기존 차 처분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지난 23일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이 “국내 완성차업계는 내년 1월부터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고 선언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자체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2019년 2월 풀리면서 법적 걸림돌은 없는 상태다. 중고차 사업은 허가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사업에 나설 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대리점을 통해 중고차를 매입할 가능성이 높다. 신차를 구매하러 온 소비자가 보유하고 있던 중고차 처분을 원하면 대리점에서 매입하는 방식이다. 매입 대상은 출시한 지 5년 이내 차량 중 주행거리가 10만㎞를 넘지 않은 차량으로 한정할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26일 “대리점을 통한 중고차 매입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존 중고차 시장은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이 심각한 대표적인 레몬시장이다. 허위 매물이나 주행거리 조작 등이 빈번했다. 공정위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2018~2020년 접수된 중고차 중개 매매 관련 불만 상담건수는 2만1662건에 달한다.
그러나 소비자 평가에 민감하고 자금력 있는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기존 소비자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업체가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중고차를 점검·수리한 뒤 판매한다면 중고차 품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
수입차 업체들은 이미 국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해 성과를 내고 있다. BMW의 인증 중고차 판매량은 2014년 3820대에서 2018년 1만1687대로 늘었고, 벤츠는 같은 기간 550대에서 4640대, 아우디는 0대에서 4582대, 재규어랜드로버는 61대에서 2677대로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로선 생산, 판매 뿐만 아니라 중고차 매매 등 전 과정을 관리하면서 수많은 빅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며 “이를 토대로 신차 경쟁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