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내부 통행로는 법률상 ‘도로’가 아니므로 경찰의 음주 측정을 거부하더라도 운전면허를 취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경북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자동차 운전면허 취소 처분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8월 경북 경산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후진 중 충돌 사고를 낸 B씨의 차량을 경비초소 앞까지 30m가량 대신 운전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파출소로 임의동행했고, A씨는 경찰의 음주 측정 요구에 대해 “운전한 사실이 없다”며 거부했다. 경찰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음주 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2017년 3월부터 A씨의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처분을 내렸다.
도로교통법 제2조 제1호는 ‘도로법에 따른 도로, 유료도로법에 따른 유료도로, 농어촌도로 정비법에 따른 농어촌도로, 그 밖에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를 도로라고 규정한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이 운전한 곳이 도로가 아니므로 경찰의 음주 측정을 거부했더라도 면허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경찰에 강제로 연행돼 위법한 체포 상태에서 음주측정 요구를 받았으므로, 이를 거부하더라도 음주 측정에 불응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도 했다.
1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운전한 경비초소 앞 통행로는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량의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로서 도로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또 A씨가 임의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고지받는 등 적법하게 파출소로 임의동행했다고 봤다. 따라서 A씨의 음주 측정 거부는 면허 취소 사유라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A씨의 면허를 취소할 수 없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운전한 장소는 거주 주민이나 관련 방문객의 주차나 통행을 위해 이용될 뿐인 장소”라며 도로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승용차를 운전한 장소가 도로교통법상 소정의 도로임을 전제로 해 내려진 이 사건 처분은 처분 사유가 존재하지 않아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도로교통법상의 도로 등에 관한 법리 오해의 잘못이 없다”며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