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3일간 무료 체험하는 스캐너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가 그날 바로 구독을 취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앱 어디에도 구독 취소버튼이나 취소 요청메뉴를 찾을 수 없었다. 직접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앱 개발자를 찾아낸 뒤 이메일로 이용권 취소 신청을 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고 1년 구독료 6만원이 자동 결제됐다.
B씨는 온라인에서 3일 동안만 가격 할인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마스크 필터를 구매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난 후에도 할인행사를 계속되고 있었다. 심지어 깎아주는 금액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 B씨는 차액 반환을 요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반환 거부였다.
이커머스 시장이 성장하면서 ‘다크패턴’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다크패턴 피해자다. 다크패턴은 이용자를 속이기 위해 교묘하게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뜻한다. 영국의 독립 디자이너 해리 브링널이 2011년에 처음 공개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힘이 세지고, 활성화하면서 피해도 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대표부가 이달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전자상거래 구매 이력이 있는 소비자의 절반 가량이 다크패턴 피해를 경험했다.
다크패턴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불쾌한 경험’이다. 정기결제 서비스를 중단하려고 할 때 혜택을 포기하겠냐고 되묻는 것, 무료·할인 서비스 이후 사전고지 없이 이뤄지는 자동 결제, 장바구니에 상품을 몰래 넣거나 마지막 단계에서 배송료 등 예상치 못한 비용을 추가하는 행위 등이 다크패턴에 해당한다.
팝업 광고의 ‘닫기’ 버튼을 아주 작게 만들어 누르기 어렵게 하거나, 광고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도 다크패턴의 일종이다. 온라인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다크패턴 유형도 증가세다.
국내에서도 다크패턴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7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카테고리 10개당 유료결제가 이뤄지는 상위 10개(총 100개)의 앱을 조사했더니, 97%의 앱에서 다크패턴이 보였다. 앱당 평균 2.7개, 가장 많은 앱의 경우 최대 6개까지 발견되기도 했다.
가장 많은 유형은 ‘개인정보 공유’(19.8%)였다. 소셜 로그인 등을 통해 소비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도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데 동의하게 되는 걸 말한다. 자동 결제(13.8%), 선택 강요(10.4%), 해지 방해와 압박 판매(10.1%) 등이 뒤를 이었다.
일부에선 다크패턴을 앱이나 판매자의 ‘마케팅 수단’이라고 항변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마케팅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유승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마케팅은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효용이 있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다크패턴은 소비자 효용이 전혀 없는 기만행위다. 다크패턴은 명백한 광고 사기, 마케팅 사기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크패턴 피해사례가 증가하자 국가 차원에서의 대응과 공조도 늘고 있다. OECD는 지난달에 주요국 경쟁당국이 참석하는 소비자정책위원회를 개최하고 다크패턴 유형, 소비자 피해사례, 예방을 위한 입법 방안, 국제 공조 등을 논의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7월 현황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다크패턴의 유형 분류가 구체적이지 않아 피해현황 파악부터 쉽지 않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 상담 사례에서 다크패턴이 따로 유형화돼 있지 않고, 다크패턴의 유형도 증가세이기 때문에 피해 건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해외에서 더 많이 연구되고 공론화된 측면이 있는데, 유형 연구가 더 활발히 이뤄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개별 대응하기보다는 정부와 민간이 손을 잡고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교수는 “소비자들이 다크패턴의 유형을 알고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형이 너무 다양하고 교묘해서 일반인은 피해가기 쉽지 않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협의하고 기술·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공동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