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22일(현지시간) 백신 부스터샷을 접종했더라도 연말 대규모 모임에 참석하는 건 안전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마치고 정부의 방역조치를 따른다면 연휴를 축하하고 즐길 수 있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이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브리핑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가족들과 (연휴 때) 함께 모이는 건 좋다. 그러나 이것이 대규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과 혼동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참석자들의) 백신 접종 여부를 모르는 30명, 40명, 50명 규모 모임이 많다”며 “가능한 한 높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멀리할 것을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로셸 월렌스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도 “우리는 분명 대규모 모임을 옹호하지 않는다. 이것은 안전한 모임에 대한 명확한 지침 수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오미크론 변이의 치명도가 델타 변이에 비교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방역 조치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오미크론 확산 근거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최근 극적인 확진자 감소 사례가 나오고 있다. 남아공 팬데믹 대응팀 살림 압둘 카림 박사는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이전 변이들이 킬리만자로와 같은 모양의 (완만한) 파동이었다면, 오미크론은 (경사가 급한) 에베레스트의 노스페이스를 확장한 것 같다”며 “우리는 이제 사우스페이스로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연구에서는 오미크론 변이에 의한 입원 위험이 델타 변이와 비교해 70% 낮다는 결과도 나왔다. 남아공 국립전염병연구소도 오미크론이 이전 변이보다 입원과 중증 사례를 더 적게 발생시킨다는 초기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파우치 소장도 이날 남아공과 스코틀랜드의 연구를 인용했다. 그러나 “초기 증거에 따르면 오미크론이 델타 변이보다 덜 심각하지만, 미국인들은 신중해야 한다”며 “심각도가 감소하더라도 개별 사례가 훨씬 많다면 덜 심각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경고했다.
중증 환자 발생 비율이 낮더라도 광범위한 확산으로 입원 환자 숫자 자체가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입원환자 급증은 미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WP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겨울 급증과 급성 환자의 증가는 전국 병원을 압도하고 있다”며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응급실 대기시간을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아공의 경우 백신 접종률이 높은 젊은 층 감염 비율이 높아 고령층 환자 위주의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WP는 “미 보건당국은 남아공의 데이터가 고무적이지만, 인구 통계나 기타 요인의 차이로 아직 미국에 적용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선 이날 오미크론 변이가 50개 주 전역에서 보고됐다. 이달 초 캘리포니아주에서 첫 확진자가 보고된 지 22일 만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자체 집계 결과 일주일 평균 코로나 하루 신규 확진자가 15만5000명에 근접했다고 설명했다. 2주 전보다 27%나 증가한 수치다.
빌 게이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도 이날 트위터에 “휴일 계획 대부분을 취소했다. 팬데믹 시작 이후 미국은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오미크론 변이의 중증 유발 위험이 델타 변이의 절반에 불과하더라도 전염력이 강해 현재 나타나는 감염자 급증은 사상 최악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번 유행이 미국에서 3개월 정도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올바른 조치를 하면 팬데믹은 내년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