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실트론 인수‘ 위법하지만, 검찰 고발은 안한다

입력 2021-12-22 17:45 수정 2021-12-22 19:50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SK 최태원 회장이 LG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SK의 사업기회를 가로챈 것으로 판단하고, SK와 최 회장에게 각각 과징금 8억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검찰 고발 조치가 빠졌고, 과징금 수준도 낮아 ‘솜방망이’ 제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2017년 SK가 실트론 주식 70.6%를 취득한 후, 잔여주식 29.4%를 취득할 수 있음에도 이를 최 회장이 부당하게 가져갔다고 봤다. 총수 개인이 절대적 지배력과 내부정보를 활용해 계열사 재산인 ‘사업기회’를 받은 사례에 대한 제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최 회장에 대한 개인 고발 조치는 빠졌다. 육성권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이사회 승인 등 절차 위반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어 행위가 중대·명백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원과 공정위의 선례가 없기 때문에 법 위반 인식을 갖고 행해진 행위라고 보기도 어려워 고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취득한 지분 가치가 지난해 말 기준 약 2000억원이 올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SK실트론이 미상장 상태이기 때문에 SK가 최 회장에게 제공한 사업기회 가치가 얼마인지 산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매출액이 없는 경우 20억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 공정거래법 규정에 근거해 정액과징금 16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와 SK는 지난 15일 전원회의에서 주식 취득 기회를 ‘사업기회’로 볼 수 있는지, SK가 사업기회를 최 회장에게 ‘제공’한 것인지, SK가 ‘합리적’으로 사업기회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두고 10시간 가까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SK 측은 사업기회가 아닌 단순한 ‘재무적 투자 기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소수지분 투자로서 경영권과 무관하고, 이미 지분 70.6%를 확보한 상황에서 최 회장이 나머지 지분을 인수할 경우 손실리스크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반면 공정위 심사관은 경영권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고, 지분 100%를 인수할 경우 이익이 존재했다고 반박했다.

SK가 사업기회를 제공한 것인지를 두고도 SK 측은 최 회장이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해 경쟁 끝에 선정됐다고 주장했지만, 심사관은 입찰당사자 간 재량이 많았고 SK의 비협조 등으로 다른 인수 후보자의 입찰 참여는 사실상 제한됐다고 반박했다.

공정위 심사관은 또 최 회장 지분 인수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점은 상법 위반일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상 합리적인 사업 기회 포기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SK 측은 입찰 불참 결정에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례적으로 전원회의에 참석한 최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회사의 이익을 가로채거나 위법한 행위를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며 “실트론 지분 인수가 그룹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나름 개인적인 리스크가 있지만 감안하고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정위 결정에 SK는 즉각 반발했다. SK는 입장문에서 “그동안 SK실트론 사건에 대해 충실하게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최 회장에 대한 고발조치를 하지 않았지만 의무고발권한을 가진 검찰과 중소기업벤처부가 향후 공정위에 고발 요청을 할 지도 관심사다. 두 기관 중 어느 한쪽이라도 최 회장에 대한 고발요청을 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한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