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갑론을박…“창작자의 책임” vs “표현의 자유”

입력 2021-12-22 16:37
JTBC 주말극 '설강화' 공식 포스터. JTBC 제공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JTBC 주말극 ‘설강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시청자는 물론 작가, 역사학자, 비평가 등 의견이 갈리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설강화는 1987년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담은 시대극으로 2회까지 방영된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영화 ‘소원’, ‘균’ 등을 집필한 소설가 겸 드라마 작가 소재원은 21일 인스타그램에 설강화 논란과 관련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나에게도 많은 분들이 5·18 역사를 집필할 것을 권유했다”며 “작가 펜은 늘 정의로워야 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에겐 칼이 돼야 한다. 진실을 말하고 지켜야 한다.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돼야 한다. 이건 신념이 아닌 대중이란 신앙에게 지켜야 할 계명”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소 작가는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글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 시절을 감히 내 머리와 가슴만으로 쓴다는 사실이 버겁고 대중을 향한 배신과 같이 느껴졌다”며 “다른 누군가가 이슈와 자극적 소재, 인기, 시청률, 관심을 위해 집필한다고 해도 모든 작가의 펜이 상상과 허구라는 명분으로 그리한다 한들, 나의 펜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소재원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역사학자들의 의견도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 없이 날조할 권리가 창작자에게 있다면, 그들을 응징할 권리는 시민들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전 박사는 20일 페이스북에 “1987년 민주화운동 배후에 북한 간첩이 있었고, 정부 요원들이 고문은 불가피했다는 생각을 담은 창작물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80년 광주 무장 공격을 주도했다는 생각을 담은 창작물이나,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취업자라는 생각을 담은 창작물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창작자에게 역사적 사실을 날조할 자유가 있지만, 그 날조에 사회·문화적 책임을 질 의무도 있다”고 말했다. 설강화 논란에 대해 소 작가와 같이 창작자의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읽힌다.

반면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설강화의 역사 왜곡 의도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 교수는 앞서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송 2회 만에 종영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논란 때도 드라마를 옹호한 바 있다.

그는 21일 페이스북에 “설강화를 2회까지 시청한 바로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안기부 미화나 민주화운동 폄훼 등 의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안기부 미화 의도성을 의심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건 남자 주인공 (정해인) 직업이 무려 간첩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드라마에서 운동권은 시대 분위기를 내는 소재 정도로 가볍게 사용되고 있지만, 운동권을 비웃거나 폄훼하지 않는다. 안기부가 악명만큼 사악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폭력적이고 부정적 느낌을 주는 집단 정도로 묘사된다”고 했다.

진중권 교수 페이스북 캡처

비평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역시 설강화를 옹호하는 입장에 힘을 보탰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맥락에서다.

진 교수는 21일 페이스북에 해당 논란에 대해 “대체 이게 뭐 하는 짓들인지”라며 “한쪽에서는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고 난리를 치고, 다른 쪽에서는 간첩을 미화했다고 국보법으로 고발을 하고. 편은 다르지만 멘털리티는 동일한 사람들. 둘 다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봐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 초석”이라며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시청자 권리를 자기들이 침해해도 된다고 믿는 건지. 징그러운 이념 깡패들의 횡포를 혐오한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드라마 설강화 방영 중지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재됐다. 해당 청원은 하루 만에 동의수 20만명을 돌파했으며, 22일 오전 11시를 기준으로 33명이 훌쩍 넘는 시민들이 동의를 표한 상태다.

계속되는 논란에 JTBC는 21일 입장문을 통해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며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대부분 오해가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억압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