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제주도 초가집은 음예(陰翳, 어둡고 침침함) 공간과 더 어울린다. 기존 한옥에서는 느끼지 못한다. 초가는 겹집이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어릴 때 살았던 초가집은 어슴푸레한 빛이 있었다. 정지의 덧문을 통해 살짝 나오는 아주 가느다란 빙, 빛은 어둠에 있을 때 더 강렬하다. 한참 나중에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순례자 성당’에서 이러한 빛을 보았는데, 제주 초가집에 스며드는 빛과 견주고 싶은 마음이다.’ (본문 중)
제주의 풍토를 잘 이해한 건축물은 어떤 것인가. 건축가들에게 지역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제주에서 30년째 기자로 활동하며 제주의 문화와 건축에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져온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56)이 공간에 지역성을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주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제주 건축가다’를 발간했다.
저자가 만난 건축가 19인은 대부분 1970년대 생으로 제주에서 성장해 지역에 대한 자긍심이 큰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20년 이상 건축 활동을 해오면서 고민해 온 제주의 땅과 건축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풀어냈다.
제주는 독특한 자연 만큼이나 독특한 공간과 모습을 가지고 있다. 바람에 잘 견디도록 낮게 설계된 초가집도, 옴팡진(움푹한) 마당도,바다와 뭍의 경계 면인 바당(바다)도, 올레라는 골목길이 있는 마을도 육지와 확연히 다른 형태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이 같은 지역적 이질감은 육지의 많은 사람들을 제주로 끌어들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책은 디자인이 잘된 건축을 기술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제주 건축가들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현대 건축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나 제주에서 살고 싶은 사람, 제주에서 건축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줄 만한 내용들이다.
제주 자연을 일개 기업이 사유화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 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환경 보존을 위해 필요한 건축의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 가치가 담긴 공간 구성, 자연을 배려하는 구조 등 우리가 한 번쯤 제주의 건축물들을 보며 품었을 의문이나 탄성, 아쉬움에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다.
저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제주에서 글 쓰는 기자로 살고 있다. 2017 제주건축문화축제에서 제주건축문화인상을 받았다. 저서로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2016)가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