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옹호한다고 ‘병명’ 거론…상처 후벼판 여권

입력 2021-12-22 00:05 수정 2021-12-22 00:05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들의 입사지원서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끝에 21일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1일 “아버지가 민정수석”이라는 등의 내용을 아들이 입사지원서에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직을 내려놓자, 여권 인사를 중심으로 김 수석을 옹호하는 글이 SNS에서 공유됐다. 문제는 이 글에 김 수석 아들의 구체적인 병명이 고스란히 적힌 채로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가 우려되고, 더 나아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낙인’ 효과가 염려된다는 비판이었다. 전문가들은 특히 김 수석 아들과 관련해 언급된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김 수석이 아들의 ‘입사지원서 논란’으로 사퇴한 뒤 그를 옹호하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남영희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 등 다른 여권 인사들도 이 글을 공유했다.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는 이번 사건을 보도한 MBC를 향해 “꼭 그런 식으로 보도했어야 하는 일이었을까”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꼭 사표를 처리했어야 하는 일이었을까”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전 의원 등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김진국 민정수석 친형의 글을 여기에 옮겨왔다”며 글을 공유했다. 이 글은 김 수석의 친형이 지인들의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수석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에 따라 이상 행동을 하게 된 것을 참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김 수석 친형, 조카 병명 말하며 안타까움 토로

김 수석의 친형은 글에서 김 수석 아들의 구체적인 병명을 언급하면서 조카가 그동안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적었다.

그는 “제 동생이 임명 후 잡음 한 번 안 내고 문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아들이 사고를 쳤다”며 “그래도 본인의 과실이라고 사과하는 동생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단독 보도한 MBC도 조금만 알아보면 웃픈(웃기고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 텐데”라고 썼다.

전날 MBC 보도에 따르면 김 수석의 아들은 최근 한 컨설팅업체의 금융영업직에 지원하면서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께서 김진국 민정수석입니다”라거나 “아버지께서 많은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김 수석은 “아들이 불안과 강박 증세 등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사과하고 사의를 밝혔다. 김 수석은 해명 후 사퇴하는 과정에서 아들의 구체적인 병명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인권위 “정신질환 사실 공개 우려 표명”

문제는 개인의 정신병력은 내밀한 영역에 속하므로 함부로 공개해선 안 된다는 데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경찰청의 ‘정신질환 임의공개 관행’에 대해 의견을 표명했다.

당시 인권위는 “건강에 대한 정보는 사생활에 속하는 내밀한 민감 정보”라며 “현재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과거에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실의 공개는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과 사회 통념을 감안할 때 타인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정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사회적 낙인 효과…특정 행동 연결은 무리”

전문가들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구체적인 병명을 제3자가 볼 수 있는 SNS에서 공유하는 건 인권침해 요소가 크고, 김 수석 아들이 특정 질환 때문에 문제되는 행동을 했다고 연결시키는 것 자체로 편견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사자의 동의 없는 병명 공개 등이 자칫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유상 용인정신병원장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본인 허락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비밀을 SNS에 이렇게 올리는 방식이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마치 특정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일상적으로 김 수석 아들 같은 행동을 하니 이해해줘야 한다는 취지라면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마치 해당 질환이 있으면 무조건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특정 환자에 대한 편견을 가져올 수 있는 내용을 SNS에서 공유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보도내용상 김 수석 아들의 행동은 현실 검증력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측면은 있다”면서도 “김 수석 관련 글에 언급된 질병과 아들의 행동에 인과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김 수석 관련 글에 나온 질병은 특히 사회적 낙인효과가 크고 당사자의 사회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이런 정보를 퍼나르는 건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질병을 앓는 다른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도 차별과 함께 부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