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푸르렀던 저항시인 이육사를 품은 책 ‘칠월의 청포도’

입력 2021-12-21 16:57
이육사 시인의 꿈과 이야기를 담은 책 '칠월의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일제강점기 대표 저항시인인 이육사 시인(1904∼1944)의 생애와 작품을 생생하게 품은 책이 출간됐다. <칠월의 청포도-이육사 이야기>(북멘토).

저자는 자율형 사립고 상산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강영준 교사다. 강 교사는 ‘익은 청포도’가 아닌 ‘익어 가는 청포도’처럼 젊고 푸르게 살다 간 이육사 시인의 싱그러운 꿈과 일대기를 꼼꼼히 담았다.

“그에게 산다는 것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고난과 역경이었을지 모르나 그에게 삶은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히는 시간이었죠.”

강 교사는 이육사를 ‘젊고 푸른 시인이었다’고 정의했다. 그는 “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할 때도, 대구 감옥에서 첫 옥살이를 할 때도 중국에서 군사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독립운동을 활약할 때도, 심지어 폐병으로 시름시름 앓을 때조차 그는 청포도가 익어가는 중이라고 여겼을 것이다”며 “푸른 하늘처럼 자유롭고 억압이 없는 세계를 청포도와 함께 꿈꾸고 있었다”고 적었다.

강 교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적인 지배 아래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행동하고, 굴하지 않는 저항 정신으로 투쟁한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그는 언젠가 이루어 낼 독립이라는 꿈과 무한한 자유, 희망의 세상을 품었던 이 시인의 삶을 충분히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도록 싱그럽게 그려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중략)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시인의 ‘광야’)

저자는 이육사 시인이 저항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무한하고 숭고한 희망을 품고 살았던 로맨티스트였다고 평했다.

강 교사는 희망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이육사 시인을 만나보고 이 시인의 삶을 통해 해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진 자료와 연보를 통해 이육사 시인이 처했던 시대의 분위기와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칠월의 청포도' 저자인 강영준(상산고) 교사. 강영준 교사 제공.

책 읽기와 생각 나누기를 즐긴다는 강 교사는 쉬지 않고 저술활동을 해 왔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10여권의 책을 펴냈다. <시로 읽자, 우리 역사>, <한중록: 누가 사도세자를 죽였는가?> 등 문학과 역사를 두루 살펴보는 글을 써왔다. <허균 씨 홍길동전은 왜 쓰셨나요?>로 제7회 창비 청소년 도서상을 받았다.

지난 여름에는 문학과 심리학을 엮어 <친애하는 내 마음에게>를 펴냈다. 그는 당시 “이 책은 마음을 알아가며 쓴 글이다. 나의 친애하는 마음을 제대로 알아야 마음을 아끼고 사랑하고, 타인의 비난에도 꿋꿋이 견디며, 누군가에게 배려를 구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믿고 마음을 공부하듯 원고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꽂이에 꽂혀 있기보다 아무 곳에서나 펼쳐 들고 잠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더없이 좋겠다”며 “제 책을 안 읽은 사람은 많아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두고두고 보시면 좋겠다는 말씀이다”라고 도전적으로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