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바라셨습니다. 오늘을 기록해 다시는 권력이 민주주의를 흔들지 않는 나라를 후대에 물려주고 싶습니다.”
전두환정권 당시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지난 1980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던 고(故) 이소선 여사의 아들 전태삼(71)씨가 21일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41년 만에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법정 앞에서 울먹였다. 전씨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선고 공판이 2~3분 가량 일찍 시작돼 정각에 도착한 전씨는 무죄 선고를 직접 듣지 못했다. 텅 빈 법정을 한동안 떠나지 못한 채 “판결 내용은 어떻게 볼 수 있냐” “정말 무죄 맞냐” “유족 없이 끝난 것이 맞냐”고 물었다.
그는 “법정에 들어가지 못해 가슴이 미어진다. 오랜 시간 기다린 재심이 순식간에 끝나 허탈한 마음도 든다”면서도 “이번 판결이 역사를 바로잡아나갈 수 있는 중대한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홍순욱)는 이 여사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사가 사망한 지 10년, 군사법정에서 징역형을 확정받은 지 41년 만이다.
이 여사는 1970년 11월 아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후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1980년 5월 4일 고려대 시국 성토 농성에 참여해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는 연설을 하고, 같은 달 9일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에 참가해 신군부 쿠데타를 규탄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은 청계피복노조 설립자로서 1970년대부터 노동운동 선두에 서왔다”며 “시국 농성과 노동자 집회에 참석한 행위는 시기와 동기, 목적 등에 비춰 볼 때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에 해당돼 피고인의 공소 사실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이번 재심은 매우 고무적”이라면서도 “5·18민주화운동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행은 정당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이 2001년 나왔는데 41년 만의 재심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구제받지 못한 전두환 군사법정 피해자들이 있다”며 “어둠의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서인선)는 지난 4월 직권으로 이 여사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뒤 지난달 무죄를 구형했다. 대검찰청은 2017년부터 5·18민주화운동, 부마항쟁 등 과거사 사건에 대해 직권 재심 청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