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조선인 강제 징용지인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가운데 이곳에서 강제노역한 조선인이 1000명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본 공문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들이 월급도 제대로 받지 않은 사실이 공문서로 드러났다.
일본 니가타노동기준국이 작성한 ‘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채무 등에 관한 조사에 관해’라는 공문서에는 ‘1949년 2월 25일에 1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으로 23만1059엔59전이 공탁됐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채무자는 다이헤이 광업주식회사 사도광업소 측이고 공탁 기관은 니가타 사법사무국 아이카와 출장소였다.
해당 문서는 니가타노동기준국이 1950년 10월 31일 당시 노동성 노동기준국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었다. 고바야시 히사토모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 사무국 차장이 과거 확보한 자료를 최근 검토하는 과정에서 해당 문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고바야시 차장은 일본 법무성의 지역 사무소인 니가타지방 법무국을 통해 최근 확보한 공탁원부 및 금전 공탁 원장에서도 동일한 날짜에 같은 금액이 공탁된 것을 확인했다. 이 문서에는 1949년 2월 25일 임금과 퇴직금 변제를 이유로 23만1059엔59전이 공탁됐다고 수입 항목에 적혀 있었다.
니가타지방 법무국이 개인 정보라며 문서 일부에 먹칠을 한 탓에 공탁금 지정 수취인은 ‘누구’ 외 1140명으로만 확인됐다. 니가타노동기준국 작성 공문서와 수취인원에서 1명의 차이가 나지만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에 관해 연구해 온 히로세 데이조 일본 후쿠오카대 명예교수는 이들 문서에 대해 “미쓰비시 광업 사도광업소 이외의 곳에서 나온 새로운 숫자”라며 “적어도 2000명 정도로 추정되는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중 1141명이 사료로 증명된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일본 당국은 공탁금 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해 1959년 5월 11일 공탁금을 국고에 편입했다. 고바야시 차장은 “민사 공탁을 하려면 당사자(채권자)에게 공탁한다는 통지를 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으므로 법률적으로 성립된 공탁이라 말하기 어렵다”며 일본 측 대응에 여러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사도광산에 동원됐던 조선인 생존자가 있다면 당시 체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