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측 “설강화, 명백한 왜곡 의도 지닌 드라마”

입력 2021-12-21 10:11 수정 2021-12-21 11:22
설강화 드라마 포스터. JTBC

고(故) 박종철 열사 측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JTBC 드라마 설강화에 대해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현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20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직접 봤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1987년 1월 민주화운동 중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돼 경찰 고문으로 사망했던 박종철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회다.

이 국장은 “드라마를 보면서 우려가 기우이길 바랐는데 역사적으로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나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현주 사무국장. MBC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유튜브

박종철사업회 측 “안기부 요원 서사, 굉장히 황당”

이 국장은 특히 드라마에서 소재가 된 안기부에 대해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기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은폐될지 모르는 상황에 항상 노출돼 있었다”며 “안기부는 민주화운동을 요구하거나 운동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잡아다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을 했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이어 “안기부는 국민에게 간첩들이 곳곳에서 암약하는데 너희가 철없이 민주화를 요구하냐는 협박을 했었다”며 “피해자들이 아직도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이런 키워드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자체에 걱정이 컸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드라마에 등장한 안기부 팀장에 대해 “서사가 굉장히 황당했다”며 “안기부 팀장이 간첩을 쫓다가 동료가 희생당했다”고 말했다. 간첩을 쫓는 안기부 팀장의 행동이 희생자로서 정의되고 피해자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 “안기부 직원은 부조리한 현실, 국가권력과 언론, 국민으로부터 진실을 외면받는 피해자가 되고, 혼자서 진실을 꿰뚫고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로 미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제작진이 ‘안기부에 대한 미화가 아니고 오히려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국장은 창작의 자유와 관련한 지점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역사를 갖고 가상의 세계 배경을 한 게 아니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드라마를 시작할 때 사건과 배경이 실제와 관련 없다는 지적이 나오더라”며 “그 자막 하나로 관련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저희는 아픈 역사가 많았다. 국가가 국민을 향해서 폭력을 휘두르고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정권을 유지했던 역사가 되풀이됐다”며 “아픈 역사를 다룰 때는 콘텐츠를 만드는 분이 더한 무게를 가지고 봐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철저하게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선 가상으로라도 배경을 써선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설강화 방영 중지 청원 30만명 동의

설강화 드라마 포스터.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방영 중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1일 기준 3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설강화는 독재정권 시절 1987년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담은 시대극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극 중 베를린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으로 알려진 주인공 임수호(정해인)가 실제로는 남파 간첩이었다는 설정이다. 여주인공 은영로(지수)는 그가 데모하다 안기부로부터 쫓겨 온 운동권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돕는다.

앞서 JTBC 및 제작진은 드라마에 대해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고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 이야기라는 입장을 밝혔다. JTBC는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조현탁 감독은 지난 16일 온라인 제작 발표회에서 “1987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군부정권과 대선정국이라는 상황 외에 모든 인물과 설정 기관은 가상의 창작물”이라고 밝혔다.

앞서 드라마 시놉시스에 안기부 요원에 대해 ‘대쪽 같다’고 표현한 부분이 노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JTBC는 앞서 이에 대해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라 그렇게 묘사한 것”이라고 해명했었다.

드라마 역사왜곡 논란은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때도 벌어졌었다. 조선구마사는 중국식 한복, 월병 등을 소품으로 활용했다가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방송 2회 만에 종영했다. 일각에서는 상상으로 창조해 낸 드라마 설정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창작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