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e스포츠 ‘두두’ 이동주의 별명 중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무력(武力)의 두두’다. 화끈한 플레이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라인전에서의 공격적인 딜 교환, 과감한 사이드 플레이와 그래서 종종 나오는 실점. 여기에 ‘더샤이’ 강승록을 롤 모델로 지목하기까지 해 무력파 탑라이너란 이미지가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지난 1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캠프원에서 만나 30분 동안 대화를 나눠본 협곡 밖 이동주는 무력파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자신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선수들의 장단점을 세밀하게 분석한 뒤 응용하는 두뇌파 선수에 더 가까웠다. 이번 기사로 무력이란 두 글자 뒤에 가려져 있던 이동주의 새로운 면을 전달하고자 한다.
-다사다난한 2021시즌을 보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팀도 부진했다.
“나의 2021시즌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경험’이었다. 안에서는 실력이 좋은 선수들과 함께하며 많은 걸 배웠다. 밖에서는 다른 팀 탑라이너들과 부딪쳐보며 ‘역시 LCK는 쉽지 않은 무대’라고 느꼈다. 각자 개성과 장단점이 뚜렷했고, 단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선수도 있었다. 단 한 명도 만만하게 볼 상대가 없었다.”
-내년엔 주전 경쟁 없이 선발 탑라이너로 출전한다. 부담감을 느끼진 않나.
“부담감을 느끼진 않는다. 1군에 유일한 탑라이너로 이름을 올린 만큼 더 큰 책임감을 갖고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엔 나만 잘하면 된다. 새로운 팀원 모두 좋은 선수들이다. 리브 샌드박스에서 온 ‘온플릭’ (김)장겸이 형을 공격적인 선수로만 알고 있었는데, 같이 게임을 해보니 생각도 깊더라.”
-공격적인 스타일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안정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격적인 색깔은 유지하되 불필요한 플레이를 줄이려 한다. 요즘 내 관심사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뚜렷한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간 내가 라인전에서 의미 없는 딜 교환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라인을 깔끔하게 밀어 넣거나, 와드를 설치하거나, 귀환 타이밍을 잡는 게 낫더라. 요즘엔 미니언 웨이브가 올 때마다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플레이의 목적이 무엇인지 점검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인상깊은 얘기다. 이 선수가 생각하는 ‘좋은 탑라이너’란 어떤 선수인가.
“최근에는 ‘정글러의 턴을 빼주는 탑라이너’가 좋은 선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최근 스크림을 여러 번 해보니 정글러의 턴 낭비가 거대한 스노우볼로 이어지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더라. 탑이 사소한 손해를 보는 수준에서 공격을 막아내면 상대 정글러는 캠프를 빼앗기고, 바텀은 다이브 압박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기인’ 김기인 선수가 그런 플레이를 정말 잘한다고 느꼈다.”
-라인전이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 선수도 평가에 동의하나.
“강한 라인전 능력은 타고나는 것 같다. 딜 교환 실력이 남다른 선수들이 있다. 또는 거리 재기 감각이 특별한 선수도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플레이를 지향하지만, 라인전 강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방법은 아는데 아직 몸이 따라주지 않는 느낌이다. 여러 라인전 고수들의 게임 리플레이를 보며 근육을 붙이는 단계다. 이 분야의 최강자는 ‘너구리’ 장하권 선수다.”
-그렇다면 이 선수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내 강점은 상대방의 실수를 캐치하고, 이용하는 능력이다. 특히 스킬 쿨타임을 이용해 딜 교환을 하는 데 자신 있다. 상대가 스킬 쿨타임일 때 배짱부리는 걸 눈치채고 강하게 딜 교환을 걸거나, 상대가 순간적으로 쿨타임을 잘못 체크했을 때 달려드는 플레이를 잘한다. 챔피언들의 스킬 쿨타임을 다른 탑라이너들보다 잘 알거나 짐작하는 편이라고 자신한다.”
-출전하진 않았지만 롤드컵 로스터에 이름을 올려 아이슬란드에 다녀왔다.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다른 팀 경기도 꾸준히 챙겨봤다. 롤드컵이란 무대가 주는 중압감 때문인지 선수들이 긴장해 실수를 저지르는 게 자주 보이더라. 반대로 상대방의 주눅 듦을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딜 교환을 하는 선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젠지 대 LNG e스포츠전이 인상 깊었다.”
-‘버돌’ 노태윤이 이렐리아를, ‘아러’ 후 자러가 피오라를 플레이했던 경기 말인가.
“그렇다. 다른 팀 경기에 대한 이야기라 말하기가 몹시 조심스럽다.”
-많은 화젯거리를 남겼던 경기인 만큼 프로 탑라이너인 이 선수의 감상을 꼭 듣고 싶다. 기자도 이렐리아에 몰입해 경기를 여러 번 복기해봤지만, 도저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더라. 이렐리아가 어떤 플레이를 해도 비슷한 그림이 나왔을 것 같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당시에 이렐리아가 처음 진출 타이밍을 잡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미니언 웨이브가 라인에 도착했을 때 라인전 승패가 반 이상 갈렸다고 본다.”
-만약 이 선수가 이렐리아를 플레이했다면 어떻게 첫 라인전을 풀어나갔을까.
“나였다면 근거리 미니언 3개의 경험치만 먹는 데 집중했을 것 같다. 물론 피오라가 그마저도 저지하려고 딜 교환을 걸어올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체력이 빠지는 건 감수해야 하는데, 그래도 최대한 덜 소모되게끔 설계하는 게 베스트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렐리아 대 피오라 같은 구도는 스크림을 통해 데이터를 충분히 누적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국내에 피오라를 즐겨 쓰는 선수가 많지 않아서다. 이런 건 솔로 랭크를 통해 자신만의 데이터를 쌓아야 하므로 쉽지 않다고 느낀다.”
-중국 탑라이너들이 피오라를 정말 잘 쓰더라.
“한국과 중국 탑라이너들 간 플레이 스타일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양 지역 선수들 모두 기본에 충실하다. 다만 챔피언 선호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중국 선수들은 피오라, 잭스를 즐겨 쓰고 한국 선수들은 카밀, 제이스를 선호한다. 전자는 극단적인 면이 있다. 후자는 밸런스가 좋다.”
-내년 스프링 시즌에 한화생명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 거로 기대하나.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대하고 있다. 내가 잘해야 한다. 나만 잘하면 전력이 확 상승할 것이다. 앞서 말씀드렸던 ‘목적이 확실한 플레이’를 완성한다면 팀도 좋은 성적을 거둘 거로 본다. 현재 내 플레이에는 100점 만점에 60점을 주고 싶다. 90점 달성을 목표로 스프링 시즌을 달려보겠다.”
-특히 신경 쓰이는 팀이나 반드시 이기고 싶은 팀이 있나.
“가장 무서운 건 젠지다. 선수 전원의 체급이 높아 우승 후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이기고 싶은 팀은 없지만, 만나고 싶은 선수는 있다. ‘기인’ 선수다. 기본기가 좋고, 라인전 개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 붙을 때마다 많이 배운다.”
-끝으로 팬들에게 2022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전한다면.
“올해 좋은 선수들이 모였다. 아직 팀원끼리 호흡을 맞추고, 단점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시기를 보내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로 믿는다. 팬분들께서 좋게 봐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