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으로도 우려스러운 지점이 많다”고 말했다. 설강화는 지난 18일 첫 방영 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윤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설강화 방영 중단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하루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와 함께 이 같은 글을 올렸다. 그는 “운동권 청년으로 위장한 남파간첩, 강직한 원칙주의자로 등장하는 안기부 요원들이라는 인물 설정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 같지만 교묘하게 비틀린 이미지를 전달한다”며 “우리 현대사에 대한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저희 세대는 5‧18 광주의 아픔 속에 군사정권과 싸우며 20대를 보내왔다. 전두환 정권의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친구들이 다치고,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잡혀가거나 스스로 죽어가는 것도 봤다”고 했다. 이어 “그 모든 사실들은 역사”라며 “역사적 사실들은 드라마를 위한 극적장치로 소모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어 “전두환이 죽은지 며칠 되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유족들의 한을 더하게 하는 망언들 또한 여전하다”며 “민주주의 투쟁 역사에 대한 일부 정치권, 야권의 폄하와 왜곡 시도는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설강화의 인물 설정과 역사 왜곡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커져 있다”며 “우리가 만들고 소비하는 콘텐츠를 세계가 함께 본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인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려된다”며 “드라마 제작진과 방송사의 역사인식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고 했다.
설강화가 논란에 휩싸이면서 드라마 협찬 업체들은 줄줄이 협찬 취소에 나서고 있다. 식품, 의상, 소품 등을 협찬한 여러 업체들이 공식 홈페이지 및 SNS 등을 통해 협찬 철회를 요청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올리고 있다. 설강화 첫 방송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라마 설강화 협찬 회사 리스트 및 해당 회사들의 SNS 주소를 정리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이날 오전까지 설강화에 대한 심의 요청 민원이 452건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설강화는 1987년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담은 시대극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극중 베를린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생으로 알려져 있는 주인공 임수호(정해인)가 실제로는 남파 간첩이었다는 설정이다. 여주인공 은영로(지수)는 그가 데모를 하다 안기부로부터 쫓겨 온 운동권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돕는다.
설강화와 관련한 방영 중단 청원을 올린 청원인 A씨는 이 같은 설정이 민주화운동 폄하라고 지적했다. A씨는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이런 드라마를 만든 것은 분명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창작물일 뿐인 드라마 설정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창작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남자 주인공이 간첩이면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 것도 아니고, 안기부 직원은 설정일 뿐”이라며 “창작의 영역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운동권으로 오인해 돕기는 하지만 이를 두고 민주화 운동 폄하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강화와 관련된 논란은 지난 3월에도 시놉시스가 일부 유출됐을 때 제기됐었다. JTBC는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고,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설강화 조현탁 감독은 지난 16일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설강화는 군부정권과 대선정국이라는 상황 외에 모든 인물과 설정 기관은 가상의 창작물”이라고 밝혔다.
앞서 드라마 역사왜곡 논란은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때도 벌어졌었다. 조선구마사는 중국식 한복, 월병 등을 소품으로 활용했다가 역사왜곡 논란으로 인해 방송 2회 만에 종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