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역사왜곡 논란 속 협찬 업체들 줄줄이 ‘손절’

입력 2021-12-20 12:46 수정 2021-12-20 14:08
설강화 티저 포스터. JTBC

JTBC 새 토일드라마 ‘설강화’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 드라마 협찬 업체들이 줄줄이 협찬 취소에 나서고 있다. 설강화 방영을 중단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하루 만에 2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제작진이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계속 이어지는 모양새다. 청와대 청원인은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드라마 방영은 중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드라마의 설정에 대한 강도 높은 검증이 창작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설강화 첫 방송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라마 설강화 지원 회사 리스트 및 해당 회사들의 SNS 주소를 정리한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제기될 조짐이 보이자 일부 업체들은 협찬을 취소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올렸다.

유기농식품 업체 싸리재마을은 19일 설강화 1화에 떡을 협찬했다. 업체 측은 공식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떡 홍보가 될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로 협찬을 결정했다. 출연 배우와 제목을 들었을 뿐 어떤 내용이 제작될 것이라는 설명을 듣지는 못했었다”며 “설강화에 대한 많은 분들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담당자에게 바로 협찬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로고는 12회까지 편집이 완료돼 수정이 어렵다고 한다. 드라마 내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협찬한 점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패션 브랜드 ‘가니송’도 “상처 받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100% 사전 제작 드라마이다보니 제품 노출을 완전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나 최대한 노출을 막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드라마에 대한 꼼꼼한 사전 조사 없이 협찬에 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저희 쪽 불찰”이라고 했다.

도자기를 협찬한 도평요 측도 공식 블로그에서 “우리나라 도자기에 대한 자부심과 50년 역사를 갖고 있는 작업장”이라며 “어떤 정치적 색깔도 없다”고 했다. 이어 “협조에 대해 자세히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됐다. 관계자분께 기업로고 삭제 요청을 했고 모든 제품은 반환처리했다”고 밝혔다. 차 브랜드 티젠, 한스전자도 협찬 취소에 나섰다.

제작진 “민주화운동 다룬 드라마 아냐” 수차례 해명

설강화는 독재정권 시절 1987년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담은 시대극이다.

설강화와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3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 때도 올라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당시 설강화의 시놉시스가 일부 유출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문제가 된 부분은 극중 베를린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생으로 알려져 있는 주인공 임수호(정해인)가 실제로는 남파 간첩이었다는 설정이다. 여주인공 은영로(지수)는 임수호가 데모를 하다 안기부로부터 쫓겨 온 운동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돕는다.

청와대 청원인 등은 이 같은 설정에 대해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한다. 청원인은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이런 드라마를 만든 것은 분명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JTBC는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서는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고,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간첩 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설강화 조현탁 감독은 지난 16일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설강화는 1987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군부정권과 대선정국이라는 상황 외에 모든 인물과 설정 기관은 가상의 창작물”이라고 밝혔다. 설정 자체가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드라마 설정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창작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나친 성역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글을 올렸다.

앞서 가수 성시경은 지난 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설강화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 “그런 오해가 있었는데 그런 내용이 아닌 걸로 저도 확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맹신하면서 그와 반대 의견을 가지거나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미워하는 그런 현상을 보면 저는 좀 불편하다. 그 다수가 옳은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말했다.

앞서 드라마 역사왜곡 논란은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때도 벌어졌다. 조선구마사는 중국식 한복, 월병 등을 소품으로 활용했다가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방송 2회 만에 종영했다. 청와대는 당시 드라마 방영 중단 국민청원에 대해 “창작물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에 대해 창작자, 제작자, 수용자 등 민간의 자정 노력 및 자율적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